1934년, 태풍 '매미'보다 몇 배로 강력한 태풍을 맞다
제14호 태풍 '매미'로 인해 거제 전역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다. '매미'로 인해 5일 동안 정전사태를 겪은 거제시민들은 "악몽 그 자체였다"고 몸서리치고 있다.

태풍 '매미'와 닮은꼴인 태풍이 경남 전역을 덮쳤다. 지금으로부터 69년 전인 1934년 7월말 남태평양 부근에서 발생한 태풍은 8월 1일 오키나와(沖繩)에서 북쪽으로 통과하면서 중심기압 710hPa 최대풍속 50m/s의 폭풍우를 동반한 초대형으로 3일 경남 해안으로 접근했다.

이 태풍은 '매미'와 같은 경로를 통해 거제, 통영지역을 강타해 인명 피해만 사망자 70명, 중상자 24명, 주택 유실과 전반파 890동, 어선 유실과 전반파 1천척 등 큰 피해를 입혔다.

당시 경남 거제로 들어온 태풍은 중심기압 720hPa 최대풍속 36m/s로 밤 9시쯤 전남 여수를 지나 거제도로 상륙했다. 특히 태풍이 상륙할 때 만조와 겹쳐 해일로 인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이 내용만 놓고 보아도 제14호 태풍 '매미'와 너무나 닮아 있다. 태풍 '매미'는 중심기압 915h㎩에 중심 부근 최대풍속이 초속 51m에 달하는 매우 강한 태풍이며, 거제도 일대에 해일피해를 입게 했다. 1934년과 똑같이 '매미'도 만조 때와 맞아 거제 지역 연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는 대형건물이나 고도로 발달한 통신기기 등도 없었지만 한달 정도 정전사태를 겪어야 했다. 또한 거제 전역은 전신전화 불통, 120여 곳 섬과 연결되는 교통 두절 등 아주 큰 피해를 입었다.
8월 3일, 9월 3일 두 차례나 큰 태풍을 맞은 거제 통영지역 주민들은 온 동네의 집과 건물 등이 날아가고, 생계 중요수단인 어선들도 유실되거나 파손되어 큰 시름을 겪어야 했다.  

1934년 8월 3일 태풍으로 인해 피해 입은 상황을 보면서 지금과 비교해 살펴보고자 한다. 1934년 태풍은 '매미'보다 최대풍속이 떨어지지만 중심기압만 보면 몇 배로 높은 것을 감안한다면 그 피해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망자 70명... 어선 1천척 피해 입어
그때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한산도, 용초도, 산양면 영운(永運)·정화(廷和)·풍화(豊和)·삼덕(三德), 원량면 동항(東港)·서산(西山)·노대도·금평(봉암도), 용남면 지도·완평·장평, 도산면 수월·저산 일대의 통영지역과, 이운면(현 장승포동 일대) 장승포·옥포, 장목면 관포·농소·외포·유호, 둔덕면 술역·어구·하둔, 거제면 법동·산달도, 사등면 가조도, 일운면 와현·예구·구조라, 동부면 오송, 연초면 오비, 하청면 칠천도·황덕도 등지다.
위 지역은 태풍 '매미'로 인해 피해를 입은 곳과 똑같았다. 이 말은 1934년 태풍도 '매미'와 같은 왼쪽에 위치한 거제·통영 일대를 정확하게 강타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1934년 태풍은 인명손실만 사망자 41명 실종자 32명 총 73명으로 집계되었고, 부상자 28명으로 최종 확인되었다. 최고 많은 인명 손실을 입은 곳은 통영 원량면(遠梁面)으로 사망자만 12명이었다. 또 거제의 경우는 사등면 가조도에서 8명, 동부면 5명 등 사망자를 낳았다.
주택과 어선 피해는 63동 유실, 전파 333동, 반파 545동, 침수 574동으로 총 1,515동이며, 어선 유실침수 131척, 전파 611척, 반파 307척 총 1,049척(1934년 거제통영 전체 어선 4,032척)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다.

또한 다른 피해는 도로 39곳, 제방 2개소, 교량 2개소 등 피해액 128,700엔(지금 환율이나 원화가치로 따지면 엄청난 금액)으로 집계되었다.

당시 주민들의 주요 생계수단인 1차 산업중 농업 피해는 침수된 논 276.1ha, 유실 23.4ha, 부분 침수 29ha 총 311.4ha이며, 밭 4,667.2ha 등 총 4,878.6ha로 집계되었다. 농작물은 벼 8,671.2ha 피해액 70,652엔, 콩 3,474.9ha 피해액 48,006엔, 기타(과수 등) 4,570ha 피해액 19,484엔으로 집계되었다. 그 외 대용작물, 뽕나무, 면작(棉作) 등은 피해 면적 26,625ha 피해액 8,557,085엔으로 엄청난 규모였다.

이재민과 응급복구 
거제·통영 이재민들은 생계수단인 어선과 논밭을 잃어 생계곤란을 겪어야 했다. 주로 통영과 거제지역의 섬 주민들은 해초나 수산물 행상을 통해 먹고살았지만, 태풍으로 인해 총독부에서 배급되는 식량외 살아가기가 막막했다. 또 대부분 주민들은 집을 잃어 길바닥이나 주변 공회당(지금의 마을회관) 등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다.
조선총독부는 거제·통영 주민들에게 식료품과 위로금을 전달했지만 턱없이 부족하여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다. 특히, 일부 공무원들은 구호물자와 위로금을 중간에서 착복하기도 했다. 일부 이재민들은 살던 터전을 버리고 경성이나 만주로 이주하기도 했다.   

피해지역 복구 상황은 경상남도 직원, 통영군 직원, 각급 기관단체 회원, 각종 사회단체 회원 등이 나와 각 지역별로 복구해야 했다. 지금과 달리 포크레인 등 중장비도 없었으며, 주로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야 했다.

이재민들은 주택과 어선을 잃어 보조금을 신청했지만, 몇몇 일본인과 조선인 재력가들에게 집중되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들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수재의연금을 모집했지만 통영군은 일반 민중에게 배급이나 일부 구호물품을 전달하는 수준이었다.
또한 일부 친일파들은 수재의연금을 착복하거나 공무원과 결탁하여 더 많이 배정받는 등 여러 번의 횡령사건으로 얼룩졌다.   

암울한 식민지에서 맞은 태풍 피해자들
1934년 8월과 9월, 거제·통영 민중들은 일제의 악랄한 횡포와 태풍 피해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낮다'고 울부짖었다.

그 당시 태풍을 경험한 윤병수(전 거제문화원장)씨는 "대부분의 이재민들은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다"며, "차라리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좋았다"고 술회했다.
또한 한규식(당시 면서기)씨는 "일본놈들 폭압(暴壓)에 견디면서 살아야 하고, 태풍으로 피해 입어 인간이하의 생활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일제식민지 하에서 비참한 생활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태풍 '매미'를 보면서 1934년 태풍을 회상해야 했다. 1959년9월 17일 사라호 태풍을 겪은 일운면 면장을 지냈던 박병희(거제향토사연구소장)씨는 "지난 1959년 태풍 '사라'는 태풍도 아니다"며, "이번 태풍을 보니 피해가 너무나 엄청나다"고 한탄했다.   

1934년 태풍의 기억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제14호 태풍 '매미'로 인해 그때 악몽이 되살아 온다고 생존자들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