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불능선리(女主不能善理). 수년 전에 방영된 인기 역사드라마에 나온 슬로건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임금을 다룬 ‘선덕여왕’에서 반란을 일으킨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상대등 비담은 ‘여주불능선리(여자 주인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다.

‘여왕’이 아니라 ‘여주’는 정치를 못 한다며 빈계지신(牝鷄之晨)을 구실로 여왕전복사건을 일으켰지만, 김유신과 김춘추가 호위하는 여왕의 군대에 져 쿠데타는 실패했다. 요즘의 금수저, 은수저처럼 성골, 진골이 통치하던 그들만의 계급사회. 피비린내 진동하는 권력투쟁 역사는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바둑 천재 이세돌이 자웅을 겨루는 21세기에도 반복된다.

▲ 세계문명 미술기행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기획전을 위한 아트투어에서 이종구, 이원희 화백과 함께

‘공천 학살’ 뉴스로 시끄러운 선거의 계절, 인터넷 검색을 하다 대한민국 대통령들 초상화를 보았다. 국무회의 등 주요 회의가 열리는 청와대 본관 1층 세종실. 복도의 한쪽 벽면에는 역대 대통령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상화는 친일 문제가 불거졌던 김인승 화가가 그렸다. 최규하 전 대통령 초상화는 박득순 화가, 노태우 전 대통령 초상화는 김형근 화가. 전두환, 김대중,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형모 화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초상화는 대구 계명대 교수인 이원희 화가가 그렸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중앙대 교수인 이종구 서양화가의 작품이다.

▲ 중국화가 마바오종(Ma Baozhong. 馬保中)의 스탈린, 푸틴, 부시, 호지명 등 6연작 중 노무현 대통령 그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으로 도덕적으로 건강한 예술을 지향하며 현실과 역사를 외면하지 않는 ‘시대정신’에 투철한 예술가를 좋아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를 그린 이종구 화가는 ‘농민 화가’, ‘민중미술가’로 유명하다. 미술의 민주화와 사회성 회복에 관심을 가진 작가는 7, 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사회비판적 그림을 그렸다.

“인간을 위해 인간다운 삶을 위한 자유를 위해, 혈서(血書)를 써노라 자부할 수 있는 작가가 있는가?”

산업화에 방치되어 열악해져 희망 없는 고향의 농촌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리얼리즘 화가다. 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사회적 약자 편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종구 민중미술가의 작가세계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생 역정은 코드가 맞았을 것이다.

외국 선진국 역대 대통령, 수상 초상화는 연설하는 모습이나 치아가 보이는 웃음 등 역동적이고 소통하는 리더십을 담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권위적인 영정형 초상화다. 과거의 기록으로서 청와대에 초상화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디지털 시대에도 중세시대부터 그려온 유화로 작품을 할 필요가 있을까? 

▲ 체 게바라, 마오쩌둥, 마릴린 먼로 등 시대의 아이콘(Icon)을 쌀알로 작업하는 이동재 작가의 '정동영' 초상화

독창적인 픽셀아트(Pixel Art) 영역을 구축해 '쌀 작가'로 유명한 이동재 화가의 정동영 전 국회의원의 초상화는 기발하여 감동했다. 쌀 알갱이 한 톨 한 톨 붙여 만든 작품으로 밀, 보리와 함께 세계 3대 곡물의 하나인 ‘쌀’을 오브제로 선택했다. 작가의 발상에서 우리 백의민족의 정체성과 공동체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사진기가 발명되자 화가들은 ‘더는 회화가 발붙일 곳이 없다’고 위기의식에 사로잡혔었다. 그러나 인간의 창조력은 새로운 미학과 조형성으로 예술의 무궁한 가치를 확대재생산 하며 발전하고 있다. 2년 후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임할 무렵, 청와대 세종실에 걸릴 ‘창조경제’를 주창한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는 누가, 어떻게 그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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