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토방은 21세기의 입원실이다
신병시절 나는 강원도 강릉에 있는 부대에서 근무했다. 어느 날 속초 근방으로 야외훈련을 나갔을 때이다. 우리는 훈련이 끝나고 텐트 안에서 황 병장의 주도 아래 소주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쥐포를 술안주로 준비했다. 흥겹게 마시던 우리들은 그날 밤에 쥐포 한 개를 무심코 흘렸던 모양이다.

이틑날 아침이 되자 황 병장이 군화발로 짓밟힌 쥐포 한 개를 주었다. 그것은 황토가 범벅이 되어 입에 넣기엔 어쩐지 불결해 보였다. “황 병장님, 그걸 어떻게 먹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황 병장의 대답은 의외였다. “모르는 소리!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황토는 훌륭한 약이라고 했다. 더구나 소독재로선 황토만큼 좋은 게 없다고 했다.”

주위의 안타까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황 병장은 황토를 대충 털어내더니 혼자 먹기 시작했다. “야외에선 고기를 구어 먹을 때도 황토바닥에 불을 피우면 황토 성분이 배어들어 한결 미각을 돋운다.” 황토예찬론자인 황 병장은 정말 맛있게 쥐포를 씹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황토 얘기만 나오면 언제나 황 병장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황토의 신비’ 저자 유 두옥 선생은 “궁중의술에 따르면 맨발에 짚신을 신고 황토 위를 매일 이십 리씩 걸을 경우, 약기운이 넘치는 대지의 황토가 발바닥 용천혈을 통해 몸속의 노폐물과 지방분을 흡수해 내기 때문에 비만증이 감소된다고 알려져 왔다. 그리고 작열하는 태양의 기운을 받은 황토로 빚은 용기 항아리 속에서 2년 이상 흡수한 묵은 사과식초는 특히 칼륨 성분이 많아 콜레스테롤을 삭혀 배출시키는 약효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돌과 황토를 짓이겨 만든 현대식 찜질방이 등장했지만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황토를 건강관리에 활용한 흔적이 수도 없이 많다. ‘향약집성방’을 통해 우리 산야초를 연구함으로써 약재의 독립운동에 이정표를 세웠던 세종대왕도 황토방의 효력을 인정했다고 한다. 황토방 밑에 불을 질러서 실내온도가 70도C이하 정도로 내려가면 사람이 들어가 두통 등을 치료했다고 한다. ‘향약집성방’에는 황토와 관련된 처방도 실려 있음은 물론이다.

세종대왕은 황토로 만들어진 찜질방에 한의(韓醫)를 배치해 중증의 고혈압, 당뇨병 환자 등은 출입을 금하면서 약과 침, 뜸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난치병 환자들을 치료하도록 배려했다. 세종대왕 스스로도 3평짜리 전용 황토방을 마련해 놓고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수시로 드나들었다. 그 이후로 5대째에 이르도록 왕가에선 언제나 황토방을 치료실로 활용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도 황토방에서 심신을 수련한 덕분에 활쏘기의 힘을 얻었고, 고려 말 왜구에 대항한 신궁(神弓)들도 황토굴에서 수련했다는 기록이 있다. 광해군 때도 대궐 안에 3평 공간으로 황토벽 황토구들로 된 ‘황토밀실’을 지어 놓은 것이 궁중 황토방의 효시라는 것이다.

황토방은 광해군의 지병인 종기 등 덧난 것을 낫게 해주는 효험이 있어 차차 건강을 위한 휴게소로 사용되었다. 또 강화도령 철종이 임금이 된 후에 두고 온 첫사랑이 그리워 상사병에 시달릴 때 ‘동의보감’을 근거로 내시들이 황토방 밀실을 만들어 철종을 요양시키기도 했다.

조선조말 외세침략과 내란 등 민란으로 심사가 어지럽던 철종과 고종황제는 하루 종일 해가 비치는 황토방 서쪽 벽에 기대어 앉아 끓어오르는 화를 다스렸다고 한다. 이런 황토방에서 작설차를 마시며 지내고 나면 고민, 번민, 늙음에서 해방되어 몸이 가벼워지고 날아갈 듯하다는 것이다.

황토에 관심이 있어 일부러 찾아뵈었던 이 춘우 (오량 군불황토방 대표)씨는 우리나라 역대 황토방에 관한 이야기를 막힘없이 털어 놓았다. “황토방은 21세기의 입원실이다. 도심에 있는 병원의 입원실은 단지 병리검사실로 족하다. 그렇게 오염된 도심 속에서 병을 치료하려는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다. 우리나라 황토에 활용되어 있는 중탄산나트륨, 중탄산칼륨은 인간의 면역력과 자연치유력을 회복시키기 때문에 황토방을 입원실로 사용해야 한다. 세종대왕이나 태조 이성계도 황토방을 즐겨 이용함으로써 건강을 회복하고 심신을 수련했다.”

이 춘우씨가 황토 흙에 대한 전문지식을 두루 갖춘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데 그 사정은 이러했다. 그는 군 제대 후 부산에 있는 동명목제에서 일했다. 건강한 체격과 부지런함으로 모범적인 평범한 월급쟁이 생활을 했다. 그런 그에게 갑작스런 불행이 찾아왔다. 간경화 판정을 받은 것. 모아둔 돈도 갈곳도 뚜렷이 없는데다가 죽음의 그림자가 늘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아 불면증에 시달리는 고통의 날이 계속 되었던 것이다.

결국 이씨는 80년 초 고향인 이곳 오량리 신계마을로 오게 됐다. 이씨는 “내가 간경화로 발전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어느 날 자신이 이렇게 되어 있었다.”며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 황토와 관련된 서적을 탐독했다. 그리고 이 씨는 즉시 실행에 옮겼다.

백양산 자락 3만여 평의 임야를 초지로 조성하고 고로쇠·동백·후박나무 등 2만여 그루의 나무를 심고 90평 규모의 군불로 지피는 재래식 황토방을 지어 문을 열었다. 2000년 초에 개장한 오양리 백양산 자락에 있는 오량군불황토방은 이렇게 탄생됐다. 이곳은 거제뿐 아니라 외지인들로부터 커다란 호응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20여 년간 투병생활을 해온 이 씨가 간경화가 말끔히 치유됐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폐결핵에 이어 자궁암 수술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황토방에서 치료한 결과 좋은 효험을 얻었다는 기사가 모 일간지에 실린 적도 있다. 현대문명을 이기는 길은 여름이 시원하고 겨울은 따뜻한 황토방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신경쇠약과 불면증에 시달릴 때도 갯벌 흙이나 황토로 베개를 만들어 베는 것도 효험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 씨가 이곳에 군불황토방을 만들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것도 그런 근거에서 기인한 것이다.

지금도 거제시 신계마을에 있는 군불황토방을 찾아 원기를 회복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공해와 문명에 찌던 관광객들은 민박을 하는 황토방에서 하룻밤을 묵으면 원기를 되찾아간다. 황토방에서의 민박은 물론 예전의 향수를 느껴보려는 이유도 있겠지만 아파트라는 시멘트 덩어리 집에서 자고 났을 때와 달리 몸이 가볍고 개운 하다는 것이 이들의 반응이다.

내가 황토만을 뇌리에 떠올리며 하루를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군불황토방(055-632-0544) 주인 이 춘우 씨와의 만남은 중요한 활력소가 되었고 유도옥 선생이 지은 ‘황토의 신비’는 내게 유익한 정보를 안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