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음불가(高音不可)의 변(辯)                                                                                                               곽 호 자 “여보세요!” 서울 사는 친구 음성이 손전화기에서 낭랑하다. 반가움에 얼른 잘 지냈냐고 화답했더니 대뜸 누구시냐고 한다. 잘못 걸린 줄 알고 당황해하는 친구에게 나는 웃음까지 곁들인다. “나야! 나!” “너 목소리가 왜 그래? 본래의 목소리를 잃은 지 두 해째에 접어든다. 피로가 쌓이는 날은 목소리가 쇳소리를 낸다. 여자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해야 듣기 좋다. 옥구슬 구르듯 맑거나 실크처럼 부드럽게 감기는 맛이 있으면 더욱 좋거늘 내 목소리는 이도 저도 아니다. 목소리가 변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목 디스크 수술을 하고 나서다. 허리 아픈 것이 또 도져 사진을 찍어보니 허리는 둘째 치고 목 사정이 더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진 상으로 나타난 내 목뼈는 개미허리처럼 잘록했다. 의사는 이대로 방치하면 전신마비가 올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수술은 불가피했다. 혹 떼러 갔다가 혹 하나 더 붙인 셈이었다. 결국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회복은 빨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목소리의 변성을 감지하지 못했다. 병중이니까 곧 본래의 목소리를 되찾겠거니 했다. 그러나 웬걸 한 달, 두 달, 이 년여가 흐른 지금에 와서도 목소리는 쉰 소리를 낸다. 답답하여 담당의를 여러 차례 만나 호소를 해봤다. 그러나 협착으로 인한 신경 손상이 원인이니 어쩔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신경 손상에 관한 짧은 설명은 이해가 충분치 못했다. 명료한 설명인들 지금에 와서 어쩌랴만 찜찜함은 가시지 않았다. 의사와 환자. 절대적인 관계가 아닌가. 병원 대합실을 메운 진료환자들 사이로 비집고 나온다. 전신마비가 올 위험을 건진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데 불신은 과연 옳은 것일까. 목 디스크의 증세는 아주 미약했다고 본다. 유난스런 통증도 없었다. 팔이 약간 저렸을 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병에 걸리면 우선 자랑을 하랬다. 목병 난 것이 창피했지만 목소리의 회복에 도움 될 귀동냥도 마다하지 않았다. 허나 헛수고였다. 의사는 신경 손상이 올 것이라는 언질을 주긴 했지만 이렇듯 목소리가 탁음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목소리가 쉰들 어떻고, 꾀꼬리 같은들 뭣하랴만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을 잘 다스리지 못한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마음과 달리 점점 말을 아끼는 버릇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사람들 앞에 나서서 대화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툭 불거지는 드센 억양을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거칠고 삭막해진 언어의 속사정을 알 리 없다. 목소리를 다듬어 봐도 그때뿐이다. 투박한 목소리는 듣는 사람에 있어서 나의 진의를 왜곡할 수도 있다. 고운 목소리는 여자의 큰 매력인 줄 누가 모르랴.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도 고운 목소리 못지않다지만 나의 경우는 엄감생심이다. 맑은 목소리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겠는데 집착을 버리지 못하니 그게 문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했다. 집착하면 할수록 골은 깊어지게 마련. 매력 없는 내 목소리를 갈고 닦을 수는 없을까. 중후한 저음으로 전환을 꾀해보면 어떨까. 자가당착일지도 모른다만 차분하게 들리는 저음의 장점. 도 래 미 파 쏘~오올 라 시 도~오. 목소리를 다듬는다. 목에 가시가 솟는다. 목이 따갑다. 목의 협곡에 일어나는 불협화음. 계속 노래를 불러본다. 음치 수준이다. 빗나가는 음을 잡는다. 음정 박자 하나만은 정확하던 노래 솜씨가 엉망이다. 도대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이제 없단 말인가 있다. 나에게 목소리를 능가할 장점 한두 가지는 왜 없겠는가.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낙천적이라는 것.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자칭 낙천가다. 때에 따라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는 양면성의 기질이다. 원래 성격이 꼬장꼬장하지가 않다. 나쁜 기억을 깊이 품지 않는다. 그런 것을 감당하기에 벅차서다. 사람에 따라 성격도 다 다르다. 성격이 다르듯 개성도 다르다. 목소리도 하나의 개성이다. 미국의 흑인 가수이자 재즈 음악가인 루이 암스트롱의 목소리는 잠자던 아가도 귀가 솔깃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성대 결절로 착각하리만치 파격적인 목소리는 기고만장했다. 페티 페이지는 어떤가. 그녀의 노래 tennessee waltz는 눈물 날 만큼 부드럽다. 낮고 깊은 저음이 감미로운 음색이 되어 세계인을 홀렸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만인의 연인은 결코 꾀꼬리 같은 목소리여야 한다는 지론은 없다. 각자가 지닌 목소리의 개성은 소중하다. 내 안의 열등감을 자신감으로 채우는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본다. 말이든, 노래든 당당해지고 싶다. 그리하여 한창 유행하던 ‘내 나이가 어때서’란 노래도 부르고 한술 더 떠서 노래방에 가서 18번 ‘사랑의 송가’도 불러보고 싶다. 가능하다고요? 그런 날이 곧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