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영민

스승의 날 아침에 모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K씨가 필자에게 뜻밖의 전화를 해왔다.

나는 20년 근속의평범한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내가 받은 봉급은 이것저것 다 합쳐도 일 년에 평균 3천2백만 원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와 함께 대학을 나와 다른 직업을 택한 친구들과 비교해본다면 부끄러울 정도로 적습니다. 그래서 늘 생활에 쪼들리는 아내에게 미안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래도 교사라는 직업을 부끄럽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습니다. 지금 같아서는 두 아이를 대학에 보낼 자신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도 어린이를 가르친다는 보람과 즐거움을 잃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 긍지며 보람이 지금 어디 갔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10일 전 어린이날 점심의 일이었습니다. 모처럼 한적한 식당에서 온 식구가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데 평소에는 명랑하던 아들이 시종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한참 동안을 머뭇거리다가 이런 말을 들려주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너의 아버지는 교사 밖에 못되느냐"고 놀리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에게 교사가 훌륭한 직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여간 안타깝지가 않았습니다.

교사라는 천직(天職)에 대한 회의는 어제 오늘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박봉에 시달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교사직에 싫증이 나기 시작한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교사가 된 당시만 해도 새나라 일꾼이 될 어린이들의 머릿속에 왕성한 호기심을 심어주고 아름다음을 보고 감동할 줄 아는 고운 마음씨를 키운다는 것에 큰 보람과 긍지를 느껴 오던 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매일같이 어린이들에게 가르쳐 온 것은 사실은 지혜가 아니라 지식의 단편들뿐이었습니다. 학교나 사회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교육자가 아니라 단순히 아이들을 길들이는 조련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서 교육자라는 긍지를 상실하게 만들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좌절감은 이래서만은 아닙니다.

나는 매일같이 아침8시 전에 등교해서 오후 5시 이후에 퇴교합니다. 그러나 어린이를 가르치는 시간보다도 하찮은 잡무에 빼앗기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은 실정입니다. 이틀이 멀다하고 작성해서 상부기관에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도 한두 가지도 아닙니다.

그것들은 대부분이 지극히 형식적이며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것들입니다. 가령 매달 15일마다 제출해야하는 폭력예방대책계획에 관한 보고서가 그중의 하나입니다. 매달 두 번씩이나 신통한 대책 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폭력사건이 그렇게 빈발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때에는 서너 시간의 여유밖에 주지 않은 채로 이러이러한 보고서를 작성해내라는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나는 소중한 수업마저도 걸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괴로움은 그런대로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견디어 낼 수 없는 것은 마치 모든 교사들이 돈을 밝히고 비리를 일삼고 있는 듯이 바라보는 세상의 눈입니다. 188번이라는 ‘감사원 일반민원 콜센터’가 있습니다. 아무나 여기에 전화를 걸기만 하면 당장에 감사원의 신고가 접수되고 그러면 그길로 문제의 교사는 교육청으로부터 감사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수업 중에도 불려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투서를 받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투서나 신고가 아무리 터무니없는 모함인 경우에도 무력한 교사는 완전히 결백이 입증될 때 까지는 온갖 수모를 견디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어느 여교사의 이른바 비리기록이 발표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것은 나와 같은 평범한 그러나 성실한 교사들에게는 전혀 믿어지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설사 그게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그런 교사가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언론마저 마치 모든 교사가 학부모들로부터 금품을 받아오고 있는 듯이 보도하고 사도(師道)의 타락을 개탄하였습니다. 그런 속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선생을 따르기를 바랄 수 있습니까?

교육이란 어린이가 선생을 따르고 우러러볼 때 비로소 바람직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교사들이 가슴아파하는 것은 금전만능의 세태가 아닙니다. 우리는 교육, 바로 그것의 위기를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내가 한때 느꼈던 교사로서의 긍지와 보람을 되찾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결코 대접을 잘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좀 더 교육정책을 바로 잡아서 어린이들이 선생님에 대한 올바른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만 해달라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내가 잠자리에 들면서 꿈꾸는 것은 오직 이것뿐입니다. 그것이 그렇게 허망한 바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