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과 기대에 화답한 미지의 나라 러시아

가는 길은 멀었다.  일곱 번 째 찾아가는 유럽판 여행길이 이번이 제일 길다. 15일 일정의 북유럽행이다. 봄이 오기 시작하는 러시아부터 발트를 도는 일정을 먼저 넣은 일행들의 기대는 설렘 반 행복 반. 누구라도 집을 떠나 어디로 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더구나 아무나 갈 수 없는 북유럽코스는 주변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도 남을 터. 일행들은 나의 오랜 지인들이다. 2년 동안 준비한 여행길. 몇 분은 처음 만나기는 해도 알음알음 서로 알고 동행하는 사이라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예전에 동유럽을 돌 때 너무 빡세게 돌아서인지 이번에는 비행기를 이동하며 힐링하는 여유로움을 택했다. 그러나 여전히 빡센 일정이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상품이라 먹을 것, 가 볼만한 데는 모두 넣었다. 24명이 함께한 15일의 여정에서 매일매일 새로움으로 만났던 푸른 하늘과 노란 유채밭과 햇빛 찬란한 북유럽의 숨은 보석들. 어떤 이는 문화와 예술의 중심을 보고 간다고 했고, 어떤 이는 인문학을 배우고 간다고 했다. 문학과 지성과 낭만이 어우러진 감동과 아름다움과 희열들을 여기 이곳에 풀어 놓는다. <편집자>

어제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새벽부터 출발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비가 오지 않길 바랬다. 새벽 4시 반, 아직은 뿌리지 않는 하늘에 고마워하며 손님들을 만나러 갔다. 오늘 일정은 부산으로 가서 뱅기 타고 김포공항에 내려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 독일 뮌헨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다시 모스크바까지 환승하는 비행기를 갈아 탄 뒤 모스크바 보르동 호텔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지구 반 바퀴를 돌고도 3/1은 더 가는 비행길이 아득했다. 루프트한자 독일항공을 탔는데 동유럽 돌때보다 더 좋은 비행기가 이번 구간에 배정됐다. 다들 별일 없이 출발했다. 총 14시간 30분의 비행시간 모스크바와는 7시간의 시차가 있다. 백야가 시작됐음인지 밤하늘은 어두워 질 줄 모르고 새벽 1시가 넘어서야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두들 내일 만나기로 하고 각자의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지하철 벽화 전시품

러시아 모스크바의 첫날이다. 구 소련의 붕괴 후 러시아 연방국가로 남아 있는 이 나라는 한반도의 78배가 넘는 세계최대의 영토 보유국이자 큰 대륙이다. 1억 5천만명의 인구와 러시아인을 비롯한 타타르인, 고려인 등 140여개 소수 민족들로 구성된 러시아는 정통 카토릭이 아닌 러시아 정교가 국교인 나라이다.

사회주의 붕괴 후 모스크바의 모습은 동토의 땅이란 흔적은 이제 찾아 볼 수 없다. 예전에 우리가 생각했던 눈보라가 치는 영화 속의 숲이라던지 눈 덮인 거리, 털모자를 눌러 쓴 콧수염의 사내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호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모습들은 간간히 그런 옛 삶의 흔적들을 곳곳에 남겨놓고 있었다.

모스크바 지하철 역

모스크바 대학

승전기념관의 꺼지지 않는 불꽃

궁백화점 외부 풍경

궁백화점 내부풍경

디오라마관 입구 조형물

모스크바 붉은 광장

아르바트 거리 풍경

푸슈킨의 신혼집

아침을 먹고 일행들은 모스크바 문화의 중심 아르바트 거리로 향했다. 거리 입구에는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대시인 알렉산드로 푸슈킨의 신혼집이 보존돼 있고 나탈리아 콘차로바 부인과 함께 한 동상도 세워져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 오리니...’라는 시로 시작되는 푸슈킨의 대표시인 ‘삶이 그대를 속일자라도’는 사랑하는 부인 나탈리아에 대한 애증과 갈등과 긍정적 삶을 노래한 시이다.  시인의 시에는 늘 사랑과 연민과 슬픔이 존재한다. 글을 쓰는 한 사람으로 이 거리에서 푸슈킨을 만난 그 자체가 기쁨이다.

거리에는 수많은 공연 포스터들이 걸려 있다. 문화와 예술의 도시답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다시 일행들은 러시아의 상징이자 모스크바의 심장인 붉은 광장으로 향했다. 보슬비가 소리 없이 내리고 있고 가이드는 이동하는 동안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과 현재의 정치 경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붉은 광장을 가로질러 궁 백화점과 러시아 건축의 백미라고 불리는 성바실리 사원을 보고 모스크바 전승기념관으로 향했다.

크레믈린궁은 외관만 보며 지났다. 목요일은 휴관이란다. 세계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세워진 기념관과 승전기념문, 승리공원, 오벨리스크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꺼지지 않는 추모 불꽃과 어린 학생들이 가져다 놓은 튜울립, 카네이션 꽃이 광장의 무거움과 적막을 희석시켰다. 고현에 세워진 포로수용소 유적지가 이곳을 모델로 삼았다는 것은 기념관의 디오라마관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승전기념관 내부 포스터

승전기념관 내부 포스터

성바실리사원

붉은광장

전승기념관을 둘러 본 일행들은 모스크바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 박물관이라고 불리우는 모스크바 지하철은 지하 100미터 아래에 위치해 있다. 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역으로 내려가 우리는 한 구간을 오가며 아름다운 역사의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화려한 장식과 미술품들이 인상적이었다.

빠른 저녁을 먹고 모스크바 대학에 잠시 내려 기념사진만 촬영한 일행들은 서둘러 상트베테르부르그로 가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4시간 50분을 가는 초고속 열차를 타고 상트로 가야만 오늘 숙박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20분을 남겨 두고 역에 도착해 뛰다시피 기차에 올랐다. 무거운 짐에 모두들 파김치가 됐다. 못 탈 뻔한 기차를 둘러보면서 한 숨이 절로 나왔다. 못탔으면 진짜 어쩌누...

가쁜 숨을 돌리고 짐들을 정리한 다음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니 광할한 지평선이 눈에 들어온다. 초록빛 풍경은 석양과 함께 절경이다. 자작나무와 푸른 숲과 끝없이 펼쳐진 들판의 모습이 노오란 민들레 꽃과 함께 목가적이다. 사람들은 말했다. 진짜 대륙의 느낌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 <계속> 이금숙 <시인/세계항공 월드투어 대표>

승전기념관 입구 조형물

성바실리사원 및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