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마지막 사랑, 구익부인(鉤翊夫人)은 태어날 때부터 오른손을 꼭 움켜쥐고 있었다. 가족들과 용한 의원들이 아무리 손을 펴려고 해도 불가능했는데, 국정시찰 중에 우연히 만난 한무제가 손을 잡으니 손이 펴졌다는 전설이 있다. 이 인연으로 한무제의 총애를 독차지한 그녀는 황후가 되고 훗날 황제가 되는 유불릉을 낳는다.

늙은 왕은 자신이 죽은 뒤, 어린 아들과 젊은 어미가 걱정이다. 당나라 측천무후, 청나라 서태후와 함께 ‘중국 3대 악녀’인 한고조 때 여태후의 독재정치. 그리고 16세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할머니, 어머니의 섭정과 외척의 폐해, 전횡에 치를 떨었던 한무제는 그 근원을 없애기 위해 사랑하는 여자를 죽인다. 국사와 권력 앞에선 사랑은 아침이슬인가?” 4년 전, 18대 대선 무렵에 지역 신문에 기고한 문화칼럼 ‘물부충생(物腐蟲生)’의 일부다. 종묘사직을 위해 사랑하는 아내까지 가차 없이 처단한 지아비 유철(劉徹)은 비정하고 잔학무도한 인간일까? 진 시황제, 청 강희제 등과 더불어 중국의 가장 위대한 황제 중 한 사람인 한무제. 그의 치세 때문에 비로소 중국은 동북아시아의 한 국가를 넘어 세계제국으로 발돋움했다는 것이 현대 역사가들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누가 감히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야만의 시대, 냉혹한 통치자의 철혈정치를 떠올리게 하는가? 신라시대 ‘미실’ 이후,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국정을 농단해 온 백성을 상실의 블랙홀에 빠지게 한 ‘순실의 시대’는 “너의 분노에 수면제를 먹여라!”며 살던 586 사내를 다시 분노하게 한다. 대하소설 ‘객주’의 무당 개똥이(매월)가 현실이 되고, 문화로 ‘장사’를 하려 한 천박한 정부의 “문화융성” 구호 속에 적폐의 대상들이, 공동체의 적들이 창조적으로 문화와 경제를 말아먹은 이 참혹함! 문화예술 분야에서 기웃거리며 사는 범부에게 ‘혜순 게이트(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백미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차관급 공직자가 조폭 흉내를 내며 광고회사를 접수(?) 하려한 음성 파일이다. 그리고 철학도 없이 대중의 입맛이나 맞추던 딴따라(?) 감독 등이 문화부를 사달 내고 영혼이 없는 공무원들이 ‘창조경제’와 ‘문화강국’을 부르짖었다는 이 참담한 현실. 이 게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이란 것도 너무 치욕스럽다.

“이 게 나라가?”, “대통령 맞소?” 주변에서 들리는 아우성. ‘태생적 한계’와 배신의 트라우마를 지닌 박근혜 대통령을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공정하지 않은 비정상 대한민국을 만들고 청산해야 할 관행, 부패, 비리 등 폐단의 몸통이라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역설한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실천한(?) 정권인가? 국민이 배신 당했다. 지난 대선 때 ‘국민행복캠프’에서 불행이 시작되었다. 다음 대통령 선거 출마자는 ‘행복’이란 거창한 구호를 팔지 마라. ‘생활정치’를 실행하며 공동체 정신을 부활시키고 경제적 부자가 아니라 인문학적 품성을 자랑하는 시민들이 활개 치는 나라. 반칙과 편법이 판을 치는 나라를 최소한 ‘노력하면 성공하는 공정한 나라’라는 믿음을 주는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문화에 대한 기본 상식은 가지고 대통령 꿈을 꾸어라, 제발!
“문화는 화초가 아니라 나무다. 화초는 1년이면 자라 꽃이 피지만, 나무는 수십 년을 키워야 재목이 된다.”

장안에서 벌써 차기 유력 대통령 후보의 부인 목소리가 더 크다는 말이 떠돈다. 개헌이 없다면 내년에 5년 임기의 대통령 선거가 다시 있을 것이다. 권력 하산기마다 지겹게 반복되는 친인척, 측근 비리. 4년 후에도 ‘물부충생(만물은 썩어야 벌레가 생긴다)’ 칼럼을 다시 인용하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