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도청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되어 서울구치소에서 수감중인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의 셋째 딸이 지난 달 19일 결혼한 지 한달도 안 되어 친정집에서 목매어 자살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그녀는 ‘아빠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김 전 차장의 부인은 ‘셋째가 아빠 없는 결혼식에서 너무 울어 사진을 못 찍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딸 아이는 아빠가 구속된 뒤 무척 힘들어했다. 셋째가 언론보도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을 면하거나, 처벌을 받더라도 다 나오는데 왜 아빠만 갇혀 있어야 하느냐는 얘기를 했다. 특히 지난 14일 임동원, 신 건 두 전직 국정원장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동일한 불법도청사건에 대한 같은 법원의 엇갈린 판결 불법도청을 지시한 혐의로 통신비밀보호법위반죄로 구속 기소된 전 국정원 차장 김은성 피고인에 대하여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단독은 2005년 12월 징역 2년을, 항소심 재판부인 같은 법원 제1형사부는 2006년 4월 징역 1년 6월을 각 선고하였고, 이에 대하여 피고인이 상고를 포기, 위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동인은 현재 복역 중이다.
그런데 같은 혐의로 불과 2달 남짓 뒤에 구속 기소된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에 대하여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형사부는 지난 달 14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였다. 그런데 위 두 번째 판결의 양형은 첫 번째 판결과 비교해서 도무지 형평에 맞지 않는다.
첫째, 하급자인 국정원 차장에 대하여 이미 실형이 확정된 사안에 대하여 그 죄책에서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는 상급자인 국정원장들에 대하여 더 가벼운 형을 선고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둘째, 범행을 순순히 자백하였고 수사에 협조하였으며 자신이 상급자로 모셨던 국정원장들에 대한 공판기일에 나와 증언까지 하였던 전 국정원 차장에 대하여 실형을 선고한 사안에 대하여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는 전 국정원장들에 대하여 집행유예형을 선고하는 것은 법상식에 반한다. 셋째, 비록 재판부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국정원차장에 대하여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항소심판결이 확정된 마당에, 같은 법원의 1심 재판부가 이보다 경한 판결을 하는 것은 법률적으로는 하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일반인의 법감정상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징역 10년미만의 형을 선고한 사건의 양형에 대하여는 대법원도 관여하지 못하는 터에, 1심판결이 동일한 사건에 대한 같은 법원의 항소심 판결의 양형을 뒤집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넷째, 당초 신건, 임동원 전 국정원장들에 대한 사건도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과 같은 1심재판부인 형사1단독에 배당되었던 것을 피고인측의 요청에 의한 재정합의로 제22형사부로 재배당된 것도 결과적으로 위와 같은 양형상의 차이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 또한 든다.
정의의 여신이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 연쇄살인범 등 흉악범에 대하여 우리 법원은 아직도 종종 사형을 선고하고 있다. 사형폐지론자들의 주장과 같이 사형도 국가의 의한 살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사형제도가 존치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사회방위를 위하여 필요하고 피해자를 포함한 국민의 법감정에 부합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생명의 박탈을 의미하는 사형,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징역형, 재산권을 침해하는 벌금형 등과 같이 법의 이름으로 취해지는 일련의 기본권 제한은 그것을 부과하는 판결이 정당할 때만 타당하다.
그런데 그 판결의 정당성은 범죄와 형벌간에 비례의 원칙상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의 합리성이 있고, 동종유사한 범죄에 대한 판결례에 비추어 양형에 있어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을 때, 즉 형평에 맞을 때에만 담보된다. 그런 의미에서 전 국정원장들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위 판결은 전 국정원차장에 대하여 실형을 선고한 선행 판결에 비추어 양형면에서 전혀 형평에 맞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이 형평성을 상실한 판결이 급기야 감수성이 예민한 어느 여인의 죽음으로 이어져 한가정의 행복을 영원히 빼앗는 결과까지 초래한 것이다. 우리는 어느 신부의 안타까운 죽음에서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를 새삼 깨닫는다. 저울로 상징되는 형평이야말로 정의의 핵심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