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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포해전, 이순신만의 승첩인가?[논쟁]정치의 희생양 원균?
전갑생  |  jkh2000k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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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3.06.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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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6일 411주년 옥포해전대첩을 맞아 옥포대승첩제전위원회는 거제시 전역에서 옥포대승첩 승전행차 가장행렬을 비롯한 각종 행사들을 개최한다.
우리는 옥포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첫 승리한 곳', '이순신 장군이 큰공을 세웠던 곳'이라고 알고 있다. 일부는 "이순신 장군보다 원균 장군이 큰공을 세웠다"며 서로 평가를 달리하고 있어 논쟁거리로 남는 사건이다. 이 글은 '일요시사'에 게재된 박종진기자의 글임을 밝혀둔다.

최근들어 임진왜란 때의 두 장군인 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평가를 놓고 종래와 다른 견해를 표명하는 사람들이 늘고있다.‘이순신=영웅, 원균=역적’이라는 종래의 일반적 시각은 이순신을 영웅화하기 위해 원균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또 이순신이 모든 공적을 차지하기 위해 원균을 모함으로써 원균에 대한 평가가 잘못되었다는 것 등이다. 이에대해 이순신은 분명 영웅이며, 원균도 용장이지만 이순신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무장이라는 반박이 제기되고 있다. 이순신과 원균을 둘러싼 시비의 내막을 알아봤다.

상반된 역사 기록
1604년(선조37년) <선조실록> 6월25일자에는 임진왜란의 공신들에 대한 포상기록이 나타나 있다. 이에 의하면 문신으로는 이항복과 정곤수가 호성(扈聖) 일등공신으로, 무신으로는 이순신·권율·원균이 선무(宣武) 일등공신으로 명기돼 있다. 임진왜란의 영웅이자 충신으로 평가돼온 이순신과 일반적으로 ‘역적'으로 알려진 원균이 4백년전 당시에는 똑같이 일등공신으로 책봉된 것이다.
반면 인조때 편찬된 <선조수정실록>은 이순신에 대해 칭찬으로 일관하면서도 원균에 대해서는 폄하를 일삼아‘이순신=충신, 원균=역적',이라는 후세 평가의 계기가 되었다.
이이화의 "이야기 인물한국사"에 보면, "이순신은 '난중일기' 라는 개인기록을 남겨 그 과정을 알려 주고 있으나, 원균은 이런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그리하여 역사가들은 이순신의 개인기록에 의해 원균의 사람됨을 평가했는데, '난중일기' 에는 원균에 대해 철저하게 나쁘게 씌여 있었던 것이다." 라고 적고 있다.

그러면 한 시대 같은 인물에 대한 기록이 역사적 시간차를 두고 전혀 다르게 평가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근거는 실록 편찬의 역사적 배경과 편찬주체들에 있다는 것이다.

당파에 따라 실록 달라져
임진왜란·정유재란이 끝난후 의정부와 비변사·군공청(軍功廳) 등에서 공신책봉을 위한 엄격한 심사를 벌였다. 이때 이원익·이항복·이덕형 등은 선조에게 원균의 녹공을 이등급으로 정해 올렸다. 그런데 원균의 녹공 일등으로 격상되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는가. 이는 순전히 선조 개인의 지시때문이었다.
선조는 “왜적을 토벌할 때 원균은 죽기를 결심하고 매양 선봉이 되어 용맹을 떨쳐 승전하고 노획한 공이 이순신과 같다. 그런데 그 공을 이순신에게 빼앗긴 것이다"라며 이순신을 폄하하고 원균을 옹호하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 선조는 원균이 대패해 전라우수사 이억기 등과 함께 전사한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에 대해서도 패인이 원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원균을 윽박질러 출정을 명령한 도원수 권율에게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선조가 심사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균을 일등공신에 책봉토록 한 데는 그의 이순신에 대한 시기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선조는 국란이 발생하자 나라를 버리고 명나라로 도망가려고 한 반면 이순신은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순신에 대한 조정의 평가와 백성들의 신망이 높을수록 한 나라의 왕으로서 본분과 체신을 져버린 선조의 행위는 극명하게 대비가 되었다. 선조로선 체면을 위해 이순신을 깍아내릴 필요가 있었고 상대적으로 원균은 과대평가 되었다.
한편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한 서인(西人)들은 광해군때 편찬된 <선조실록>이 북인(北人)의 입장에서 쓰여져 다른 당인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서술됐다고 지적했다. 대제학 이식(李植)은 상소를 올려 실록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선조실록>은 인조반정을 성공시킨 세력들에 의해 수정되었다.
인조반정은 이이의 제자들인 서인들이 주도하고 이황의 제자들인 남인(南人)들이 동조해 성공한 쿠데타로 이순신은 남인 영수 유성룡의 추천을 받았으므로 남인으로 분류되었다. 반면 왜란 말기 조정에 비호자가 많았던 원균은 북인으로 분류되었다. 따라서 <선조수정실록>은 이순신을 후하게 기록한 반면 원균에 대해서는 박하게 기록했던 것이다.

실제의 역사
그러면 두 실록 사이의 간극에는 어떠한 역사적 진실이 존재하는가. 이순신보다 다섯 살이 많은 원균은 무과에 급제해 변방의 오랑캐를 토벌한 공로로 부령부사가 되었다가 후에 경상우수사가 되었다. 반면 이순신은 당시 일부 공적이 있었지만 유성룡의 추천을 받아 종6품 정읍현감에서 정3품 전라좌수사로 파격 승진하였다.
임란 초기 왜군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던 경상좌우수영이 거의 궤멸되자 원균은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원병을 요청해 이순신과 함께 옥포·당포 등지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실록에 따르면 여러 전쟁에서 의기투합했던 이순신과 원균은 전공(戰功)을 조정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선조 26년(1593) 8월 이순신이 신설된 삼도수군통제사에 겸임 발령되자 원균이 반발하면서 두 사람은 결정적으로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순신이 물러나고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다. 이를 두고 후세에서는 원균이 모함을 해 이순신이 물러났다고 하지만 사실은 왜적의 정보전에 조정이 당한 결과였다. 즉 왜장 가등청정은 간첩 요시라를 이용해 자신이 어느날 어느 섬에 숙박할 것이라는 거짓 정보를 유출하였다. 그러자 조정은 그러한 정보를 그대로 믿고 이순신으로 하여금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을 치라고 했지만 이순신은 그것이 계략임을 알고 출정하지 않았다. 이로인해 이순신은 명령불복으로 하옥됐고,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것이다.

군부, 정치적으로 이용
이순신과 원균은 당시 조정의 난맥상과 왜적의 계략으로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임진왜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무장이다. 차이가 있다면 인격과 공적에 있어서의 크기다.
이순신이 전쟁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시기적절한 대응으로 큰 업적을 이룬 반면, 원균은 몇차례의 전공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승부욕으로 군사를 함부로 전장에 내보내 죽게하는 우를 범하곤 하였다.
원균은 이순신처럼 불패의 명장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용감한 장수이자 왜적과 맞서 싸워 목숨을 바친 공신이다. 따라서 민족의 영웅 이순신을 미화하기 위해 원균이 ‘역적'으로 희생 될 필요는 없다.
이순신은 무(武)를 숭상하는 인물이 집권하면 항상 추앙되었다. 조선시대 북벌(北伐·청나라를 침)을 앞세웠던 효종이 그랬고, 근래에는 일본육사출신의 박정희가 그러했다.

역사의 재평가 선행되야
앞으로 옥포대첩 행사는 원균과 이순신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와 검증 작업을 꾸준히 펼쳐야  한다. 지난해 옥포대첩 승전행차 가장행렬 때 이순신만 가마를 타는 부분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고 한다.

거제문화원 관계자는 "원균 장군도 일등선무공신이기 때문에 똑같이 가마를 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거제시 관계자들은 "원균에 대해 역사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며, "이순신 장군만 가마를 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역사는 ‘하나의 진실'만을 전한다. 그 진실이 시대의 필요에 따라 왜곡된다면 정치적 노리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순신과 원균에 대해 ‘충신과 역적'이라는 이분법적인 평가는 그러한 어리석은 역사의 반복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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