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에 초대받고 여행을 떠나는 토끼와 앨리스.

갈 길은 멀지만 초대장을 읽고 있는 앨리스의 마음은 기대와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동화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구상하였다는 권신아 작가의 느낌처럼 이 시안은 새로운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제를 찾는 관객의 설레는 마음을 형상화하였다.

'사랑, 환상, 모험'을 주제로 펼쳐진 10일간의 영화여행 부천국제판타스틱문화제가 7월 10일부터 부천에서 개최된다.

수많은 영화관객들을 판타지의 세계로 이끌 제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개폐막식 사전 예매에서 <원더풀 데이즈>를 상영하는 개막식 예매가 15분 만에 완전 매진되고 <큐브>의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작품인 <싸이퍼>가 상영되는 폐막식의 예매 역시 1시간 30분 만에 바닥날 정도로 사람들은 부천판타스틱문화제를 기다려왔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포문은 애니메이션으로 연다. 영화가 인간의 꿈이자 판타지를 스크린 위에 구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애니메이션은 영화의 여러 장르 중에서 가장 적절한 선택이 될 것이다.

올해 부천에서 상영될 영화는 35개국에서 온 189편.

특히, 올해의 부천 영화제는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를 뛰어넘어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판타지 영화들을 배치한 ‘패밀리 섹션’을 강화한 것이 특색.

1996년 처음으로 소개된 이후 숱한 화제를 낳아 왔던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원더풀 데이즈>가 개막작으로 상영된다.

서기 2142년 미래 지구. 에너지 전쟁이 지구를 휩쓴 뒤 살아남은 사람들이 건설한 도시 '에코반'과 그 도시에 선택되지 못한 '마르'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에코반이 건설된 지 100년 후 인공지능도시 에코반의 심장부 델로스 타워에 누군가 침입한다. 에코반 경비대원 제이는 그가 첫사랑 수하임을 알게 된다.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첫사랑을 적으로 만난 제이는 혼란에 휩싸이고 제이를 사랑하는 경비대장 시몬 역시 수하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를 제거하려 한다.

폐허 속에 싹트는 희망을 그린 <원더풀 데이즈>(http://www.wonderfuldays.co.kr/)는 '인공'과 '폐허' 그리고 '희망'이란 화두를 선명한 애니메이션 이미지로 재현해 냈다. '인공'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끝없이 이어진 도로, 그리고 물 속에 잠긴 듯한 폐허의 도시, 눈이 부시도록 푸른 하늘을 통해 보여주는 '희망'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세 가지 이미지로 남을 것이다.

2142년 청정지역인 시실섬을 배경으로 하늘이 타버린 세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사이의 전쟁과 사랑을 그린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로 시작을 알리는 PiFan2003은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 : 여우계단>과 빈센조 나탈리의 신작 <싸이퍼>가 대미를 장식한다.

만약 권태로운 일상과 건조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당신에게 스파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모건 설리번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처음에 스파이 업무는 즐겁다. 잭 써스비라는 그럴듯한 이름은 물론 낯선 곳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화장실 같은 곳에 자신을 위해 준비된 장비들이 있다. 스파이 업무상 무역회의에 참여한 모건은 이곳에서 리타라는 여인을 만나는데, 그녀는 모건을 고용한 회사가 그의 기억을 지우고 조작했다고 이야기한다.

감독 빈센조 나탈리는 기괴한 정육면체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 <큐브>로 국내 팬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듯 그의 주된 관심사는 알 수 없는 음모에 빠져 든 인물들에 관한 것으로, 극복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는 연출력을 갖고 있다. <싸이퍼> 역시 이런 흐름에 있는 작품으로 여기서는 모건 설리번의 잃어버린 기억이 주요한 모티프다.

신인 배우들을 대거 기용한 윤재연 감독의 첫 장편에서, 돋보이는 것은 민담처럼 전해지는 흔히 듣던 이야기를, 열정과 감성의 격동기를 보내고 있는 소녀들의 심리에 중심을 두고서 올곧게 풀어냄으로써 또 한 차원의 입체감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억압과 폭력의 기제가 스며있는 학교라는 곳, 자체에 대한 관심이나, 가족의 문제 등은 조금 치워두고, 소녀들의 자아를 향한 사랑, 경쟁심, 기이한(?) 우정 등의 심리를 섬세하게 다룬 드라마가 돋보인다.

예술여고라는 특수한 환경에 구속되어 있는 십대 소녀들의 이야기라는 설정은 가장 아름다운 나이의 존재들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예술을 수련하면서, 질투 경쟁심 등의 강렬한 욕망과 감정들에 휘말려 오히려 가장 끔찍한 사건들을 벌이는 역설을 자연스럽게 끌어냈다.

또, "부천초이스"에서는 수많은 팬들로 이미 영화제 게시판을 초토화시킨 제제 타카히사의 <문차일드>, <메이드 인 홍콩>의 이찬삼이 주연한 포복절도 귀신이야기의 <스튜어디스>, <빌리 엘리어트>의 꼬마 제이미 벨과 <반지의 제왕>의 골룸으로 알려진 앤디 서키스 주연으로 1차대전 서부전선에서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유령을 만나는 영국군들의 이야기인 <데스 워치> 등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별전"과 "특별상영"도 유래없이 다양하다. '매혹과 열정의 볼리우드'는 <데브다스>, <기쁠 때나 슬플 때나>등 인도의 대중 영화를 흥겹게 즐기는 영화제의 꽃이 될 것이며, 장철의 <독비도>, <금연자>, 호금전의 <대취협> 등 30여년 만에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쇼 브라더스 영화들은 벅찬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무성영화와 시적 영화, 표현주의 등 초기 영화를 기상천외하게 비틀어 보여주는 가이 메딘 감독 특별전과, 올해 초 타계한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추모전도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3부작이 모두 프린트로 상영되는 고드프리 레지오 감독의 '카시 3부작'도 올해 부천이 자랑하는 보석이다.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판타지 영화들을 소개하는 "패밀리 섹션" 또한 강화되어 독일판 체인지 <남자가 됐어요>, '꼬마' 액션 코미디 <이다는 은행강도>, 앙증맞은 애니메이션 <어린 왕자의 하루>등 더욱 풍성한 작품들로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민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