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일부 지역이나 학교에서 졸업식이 끝나면 서로에게 달걀을 던지거나 밀가루를 뿌리며 뒤풀이를 하곤 했는데 요즘 10대들의 졸업문화를 언론 방송을 통해 보고 있자니 경건하고 아름다운 졸업식이 아니라 광란의 파티를 여는 졸업식이란 느낌이 든다.

지난주부터 거제에도 졸업식 바람이 불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교복찟기, 옷벗기기, 케찹뿌리기, 달걀던지기, 속옷입고 질주하는 학생들이 있을까 졸업식장마다 경찰들이 배치되어 학생들의 거친 졸업식 뒷풀이를 관리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지만 우려하는 그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9일 해성고등학교 졸업식장의 모습은 밝고 활기차고 엄숙했다. 재학생 졸업생 모두가 교복차림이었고 학부모들은 조용히 뒤에 서서 졸업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교정에서는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재학생들이 나와 주차안내도 하고, 행사장 안내도 직접 해 주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거제경찰서에서 배치된 경찰관 3명이 교문과 학교 입구, 행사장 주변에 배치돼 학생들의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으나 졸업식이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경찰들의 임무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었다.

예전처럼 송사도 답사도 없고 간단하기까지 한 졸업식 순서를 보며 38년 전 내가 접한 졸업식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했다.

학교 강당이 없었던 당시 우리는 장승포 성당에서 중학교졸업식을 했고, 고등학교 땐 체육관에서 의자를 가져다 놓고 졸업식을 했다.

후배들이 뿌린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환하게 웃던 친구들의 기억이 아련하다. 나팔바지 교복에 거꾸로 쓴 모자에 한 쪽다리를 떨면서 다니던 남자친구들, 그들의 졸업식은 달걀축제였고 그것이 그때는 나쁘지만은 않았다.

송사 답사에 눈이 벌겋게 되도록 울기도 하고, 꽃다발이 귀했던 당시엔 꽃다발을 돌려가며 들고 사진을 찍었다. 세월은 흘렀으나 해성고등학교 졸업식을 보며 참 아름다운 졸업식이란 걸 느꼈다.

억압과 규율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잠시 졸업생들의 분위기를 일탈의 생활로 몰고 가겠지만 아직 거제도에는 눈살을 찌뿌리는 졸업식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어려운 경제에 교복 한 벌 맞춰 입기도 힘든 후배들에게 졸업생들의 교복 물려주기와 체육복 교련복 물려주기 행사가 관례였던 당시 학창생활의 끝은 책가방까지도 기꺼이 내어주고, 참고서와 책까지도 물려주던 것이 선후배간의 정이자 가슴 찡한 이별 연습이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재학 6년 동안 나는 내 몸에 맞는 교복을 한 번도 입지 못했다. 미운오리새끼처럼 언제나 색깔이 틀리거나 커거나, 아님 어머니가 급조해서 만들어진 옷들이 전부였었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10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그 때가 인생의 황금기였던 것 같다. 동문으로 함께했던 지난 9일 해성고등학교의 졸업식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다.

3월이 되면 또 새로운 학생들이 입학을 하고 3년의 교육과정을 배워갈 것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교사들, 관련선생님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어쩌면 일선에서 학생들과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치며 사는 그들로 인해 교권의 확립은 물론, 우리의 자녀들이 건전한 사회인으로 자라날 수 있는 인성교육을 하나하나 배워갈 것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