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와디의 눈물

                                                                                           윤 석  희  ysh03333hanmail.net
                                                                                                                                          

꽃잎 다섯 장이 이룬 아이보리색의 리라와디는 정말 고와요. 노란 꽃술이 화사하지 않으면서 단아한 태를 보이지요. 나무에 달린 꽃을 처음 보면서 탄성을 질렀어요. 우아한 기품이 부러웠지요. 남국의 꽃이라 보긴 어려워도 아, 참 사진으론 가끔 만날 수 있어요. 마사지 광고 모델과 함께 합니다. 리라와디는 그녀의 머리에 꽂히거나 스파를 하는 물속에 띄워져 있어요. 향기가 그윽하여 향수 오일의 원료가 되기도 한답니다.

잔디 위를 걷고 있었어요. 새벽안개 몽환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더라고요. 송두리째 흙 위에 떨어져 있는 한 송이 꽃이 그리 마음을 사로잡는지요. 홀로 있어 돋보였을까요. 외로울 텐데 아무렇지 않나보죠. 오롯이 모양새를 잃지 않은 모습에 넋을 잃었어요. 멍하니 쳐다봤지요. 얼마큼 가다가 되돌아왔답니다. 아쉬워서요. 결국 손바닥에 올려 챙겨오고 말았고요. 오는 길에 동네 사람에게 꽃 이름을 물어봤지요. 이름까지 바뀐 사연도 알게 된 거구요. 몇 날이라도 더 보려고 유리컵의 물속에 띄웠답니다. 침대 맡에 두었지요. 시들지 않기를 꿈꾸면서요.

다음 날 눈 뜨자 인사를 했답니다. 그런데 난감합니다. 꽃잎이 밤새 울었나 봅니다. 깨끗하던 상아빛 꽃잎이 누렇습니다. 분명 눈물 자국입니다. 의연한 모습으로 당차더니 때 이른 낙화가 서러웠나요. 나무로 다시 가고 싶은 걸까요. 다른 꽃들과 헤어져 낯선 이에게 잡혀 온 억울함을 삭이고 있나봅니다. 눈물 자국 가득해도 오롯한 자태는 여전합니다. 제대로 살리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나만 안절부절못합니다.

태국북부 치앙마이의 작은 동네 마당에서 매일 운동을 했어요. 때 되면 이웃 아낙들이 모여 즐거웠답니다. 말이 아닌 몸으로 마음으로 소통하며 다 동무들이 되었고요. 그중에 아가씨도 하나 있었답니다. 바지런하고 착하다고 칭찬이 자자했어요. 형제 많고 어미 없는 집안의 맏 딸이라 했습니다. 수줍어 아낙들이 건네주는 먹거리조차도 선뜻 받지 못했어요. 조용하고 정갈한 그녀가 참 좋더라고요. 용모도 어여쁘고 총명해서 그녀의 동작을 따라하곤 했지요. 심성도 그만이었어요. 타국인인 나에게 소리 없이 웃는 모습이 어찌 그리 살가운 지요. 예쁜 머리핀이랑 빗을 쥐어주기도 했어요. 십대를 갓 지나온 푸성귀 같은 싱싱함이 주변을 푸르게 만들곤 했답니다.

엄마라 부르며 따르던 그녀를 한동안 볼 수 없었어요. 동무들에게 물었지만 쉬쉬하며 입을 다물더라고요. 보고 싶고 궁금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큰 시장에서 맞닥뜨렸답니다. 어이없었습니다. 코 큰 할아비에게 팔을 끼우고 장마당을 돌고 있는 거예요. 마주친 찰나 그녀는 장바구니를 떨어뜨렸어요. 금방 큰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쏜살같이 달아나버리는 겁니다.

현대판 심청인가요. 병든 아버지의 수술비와 생활비를 약속받고 영국 노인과 혼인을 했다합니다. 종종 보았고 소문으로 많이 들었어요. 쓸쓸한 노후와 가난한 가족들을 대립시키며 수긍해 온 일입니다. 합의점을 찾으면 된다고 동의 했지요. 내가 가고 혼자 남은 남편의 모습이라도 상관없다 끄덕였고요. 어려운 나라의 비애라고, 예전 우리 모습이라고, 아니 삶은 그리 처연한 것이라고 지나쳐버렸어요. 노년의 외로움만을 염두에 둔거지요. 우리의 이주 여성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넘긴 겁니다.

리라와디의 꽃잎에 번진 눈물이 그녀가 흘리고 만 눈물입니다. 하루 밤새 퇴색해서 무너져 내린 꽃잎은 그녀의 꽃다운 계절입니다. 참담한 현실로 얼룩진 꿈입니다.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어른인 내가 싫어지고 어미인 내가 답답합니다.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애처로운 그 꽃도 행여 쳐다보고 싶지 않았고요.

근데 그녀가 다시 나타났어요. 아무 일 없었단 듯 맑게 웃고 있습니다. 미안했다며 되레 나를 힘껏 안아줍니다. 함께 눈물을 흘렸답니다. 그렇습니다. 리라와디의 눈물 속엔 그녀의 강인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사는 겁니다. 당당하고 꿋꿋하게. 누가 감히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입니까. 살아내는 것도 또 다른 삶의 방식인 걸요. 우선 치열하게 가보자고요. 해답은 이후에 찾아내야지요.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