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하지만 무능한 군주'인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는 자신이 다스린 나라의 부패한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지금 벼슬하는 자들은 오로지 제 몸을 가지고 일을 꾀하는데, 관직을 장사처럼 생각하여 한껏 차지하고도 더 욕심을 부린다. 심지어는 파면을 당하고도 명령을 어기고 마구 긁어모으고 기회만 생기면 배를 채운다. 또 공신이나 척족들도 만족을 모르고 서울과 지역 땅을 탐욕스럽게 사 모은다. 지방관들은 지역 방어의 본분을 잊고 마을을 침탈하는데, 무뢰배들을 수족으로 삼고 간악한 자들을 받아들인다. 못난 관리들은 세력가들이 두려워 꼬리를 치며 아부한다. 악이 쌓여 관아를 좀먹으니 빌미만 생기면 낚아챈다. 오호라! 연약한 백성들이 어찌 편히 발을 뻗고 쉬겠는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자신의 통치력과 리더십 부족은 대규모 농민반란 '이자성의 난'이 일어났고, 적군이 '금지된 성'을 쳐들어오자 망국의 황제는 궁궐 회나무에 목을 매달고 자살했다. 사랑하는 황후는 그녀의 침실 교태전에서 자결했다. 명나라를 뒤이어 세계 최대 규모의 궁궐인 자금성 주인이 된 청나라는 교태전(交泰殿)이 비운의 현장이라 황후의 침전 대신 옥새 보관 장소로 활용했다.

▲ 중국 북경 자금성 교태전의 '무위(無爲)' 현판

중국 화가들과의 교류를 위해 베이징 송좡예술특구를 찾았다가 시간을 내어 자금성 관광을 온 타국의 여행자 눈에 교태전 현판 '무위(無爲)'가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대륙을 다스린 소수민족인 만주족의 통치 이념 중 하나를 황후의 침대 위에서 만나다? 청나라는 공자, 맹자의 이론을 주축으로 한 '왕도정치'와 노장사상에 기반을 둔 '무위지치(無爲之治)'로 나라를 다스렸다. 무위지치는 "다스리는 것을 백성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다스리는 것"이다. 강력한 권력자나 통치자의 위세를 드러내는 권위의 정치보다는 제도와 원칙이 확고히 세워지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추구했었단다.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乾隆帝)는 옥새 25과를 교태전에 보관하며 왕조가 25대까지 이어지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대제국의 패망 전조는 그에게서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건륭제의 치세 때 총애한 간신 화신(和珅)이 막대한 축재를 감행하였고 이를 건륭제가 눈감아 주어 순식간에 청나라의 관료사회는 부패하게 되었다.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뇌물을 챙기는 등 엄청난 횡포를 부리다가 건륭제 사후 그 뒤를 이은 아들 가경제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한다. 죽임을 당한 탐관오리 화신의 재산을 모두 압수하니 그 금액이 청나라의 15년간 재정수입 총액과 맞먹을 정도로 엄청났다고 한다.

▲ 궁궐 화재를 대비한 소방수를 담는 물항아리

건륭제는 예술과 문학의 진흥에 크게 기여했고 명군(明君)으로 불렸는데 그의 치세 후반기에 누가 늙은 황제의 눈과 귀를 가렸던가? 영광과 번영의 자금성에서 레퀴엠(requiem)이 작곡되어 자신의 기대와는 달리 12대 마지막 황제 애신각라 푸이(愛新覺羅 溥儀)를 끝으로 백성의 피눈물 속에 파국의 무덤이 되게 했을까? 동서고금 역사를 보아도 지도자의 무능과 간신의 발호, 관료사회의 부패와 타락, 과중한 세금과 민심 이반, 무리한 군사력과 재정 소모 등 멸망의 전주곡은 대동소이하다.

▲ 자금성 건청궁 옥좌 뒤의 '정대광명(正大光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