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 몸의 천장과 사방의 벽에 붙어있는 나무의 편백 향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향을 오래도록 맡은 나는 머리가 아프다. 그 나무는 마치 싸구려 향수처럼 진하디진한 냄새를 풍긴다. 그들이 문을 열었을 때, 혹시라도 그 진한 향 때문이 찡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어떤 사람은 이 향을 맡으니 숲 속에 온 것 같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아무튼, 다행이다.

나는 사각 모양의 눈을 여러 개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두 눈으로 세상을 본다지만, 난 각각 다른 크기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작은 눈에는 단풍나무의 굵은 몸통만 보인다. 늘 똑같은 모습 같지만, 날씨가 맑은 날에는 회색 연탄재를 뿌려 놓은 것처럼 푸석거리는 느낌이 든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몸통이 진한 빛을 띠며 모처럼 윤기가 흐른다. 날씨에 따라 그 색을 달리한다.

중간 크기의 눈으로는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사물 전부를 볼 수는 없지만 그게 무엇인지를 정확히 분간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마당에 서 있는 단풍나무의 몸통에서 뻗어 가려는 나뭇가지의 모습, 살랑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빨랫줄에 널린 수건, 그리고 구름 조각들.

그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눈은 가장 큰 눈이다. 그 눈으로는 모든 사물은 온전히 볼 수 있다. 단풍나무의 저마다 다른 나뭇잎의 색도 볼 수 있고, 빨랫줄을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긴 막대도 보인다. 갖가지 모양새를 하고 머문 구름도 자세를 잡는다. 호젓한 이곳에서는 그들이 모두 소중한 친구이다.

그렇다고 나는 주인이 없는 외톨박이 신세는 아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주인이 이곳에 온다. 대부분 종일 있다 가곤 하지만 어떨 때는 하룻밤 자고 가기도 한다. 그럴 때면 혹시라도 불편한 곳은 없는지 내내 마음이 쓰인다. 사람들은 나를 빈집이라고 부르지만,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가 아닌, 새로 멋스럽게 꾸민, 잠시 비어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빈집이 아니다. 주인의 친척이 놀러 왔다. 연세가 지긋한 여자는 오자마자 걸레를 들고 집 구석구석을 닦는다. 모처럼 몸이 개운해지는 것 같다. 그 여자는 비쩍 말랐으나 강단이 있어 보이고 부지런했다.

벌써 새벽 3시가 되어간다. 다들 곤히 잠을 잔다. 그들이 종일 했던 많은 이야기도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밤새 비가 묻어 들어왔다.

밖에는 마당이 보일 만큼 등이 어스레하게 비추고 있다. 바람에 단풍나무가 떨고 있다. 그 떨림은 바람이 그렇듯이, 누군가 그 마음을 건드리고 간 흔적이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마당에 서 있는 빨랫줄의 푸념 소리도 들린다. 항상 무거운 삶의 무게를 척척 얹어놓고 뒤돌아서는 사람들에게 너무 하지 않느냐고 투덜댄다. 내 품에는 사람들이 새근새근 어깨로 숨을 쉬고 있다.
나는 비어있지 않은 빈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