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중인 아들과 어느 어머니의 감동어린 아름다운 약속

▲ 문경춘 편집국장

애써 가꿔온 논밭의 곡식들은 이미 상품 가치가 없을 정도로 말라 비틀어져 버렸다. 그나마 바닥에 남아 있는 몇 모금의 물 힘으로 마지막 까지 버티던 파아란 벼 잎도 기운을 잃은채 축 늘어져 있는 TV 속의 모습이 안쓰럽다.

큰 욕심 버린채 땀 흘려 가꿔온 농작물의 枯死(고사) 모습에 농부들의 한숨소리가 온 들판을 울리고 있으니 단비가 鶴首苦待(학수고대) 되는 바쁜 하루다. 하루 빨리 하늘에서 청량제 같은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져 내려 메마른 대지를 흠뻑 적셔 주길 기대해 본다.

가뭄속에 찾아온 이번 6월 25일은 6.25 전쟁 발발 67주년이 되는 해이다. 6.25전쟁과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거제는 同族相殘(동족상잔)의 비극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에 이 날이 더욱더 잊혀지지 않는다.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동족간의 전쟁으로 인한 유일한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곳이 바로 거제다. 여기에다 함흥철수작전 당시 1만4천여명의 북한 주민들이 미군의 전쟁 물자 수송선 메르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북한을 탈출하는 과정은 이데올로기로 인한 전쟁 속에서 피어난 세계사에 빛나는 평화의 상징으로 남아 있어 아이러니 하다.

크리마스의 기적으로 까지 불리며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한 '평화의 배' 메르디스 빅토리호는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 그래서인지 전쟁속의 평화배 메르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파이브'에 얽힌 얘기는 아직도 전쟁의 포성이 우리 귀를 생생히 울리고 있다.

불행하게도 6.25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남아 있기에 아직도 긴장감은 맴돌고 있는 것이다. 전쟁을 통해 기적도 경험 했고,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도 경험했지만 정작 이 전쟁은 잠시 휴전상태에 있는 것일 뿐 아직 진행형임에 틀림없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아직도 아들을 군대에 보내 놓고 나면 부모의 마음은 어딘가 편치 않은게 사실이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불씨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항상 긴장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군 복무중인 아들을 위해 부모들은 알게 모르게 많은 신경을 써고 있는지도 모른다. 군에 간 아들을 위해 부모가 신경을 쏟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애뜻한 정성이 국가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며칠전 장평의 어느 조그마한 식당에서 평소 잘 아는 지인 둘과 함께 저녁을 하면서 들었던 감동적인 얘기가 기억난다.

20대 초반의 아들 둘을 둔 동생 뻘 되는 여인은 장남인 아들이 군 복무 중인 어느날 가족들과 함께 거제에서 군 부대로 면회를 갔다고 한다. 막 훈련소를 나와 자대에 배치된 아들은 아직 적응이 잘 안돼 약간의 불안감에 쌓여 있었다고 한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휴학계를 낸 뒤 군대에 왔으니 나이 또한 21세에 불과한 젊은 청년이었다. 아들은 두고온 여친과 가족, 남은 공부 걱정 등으로 인해 온갖 마음이 복잡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있던 아들의 어머니는 복무 중인 아들에게 이렇게 자신있는 말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너는 나라를 지키고 엄마는 너 여친을 지키겠다" 라고...

이 말을 전해들은 아들은 순간 얼굴에 금방 자신감이 감돌며 "나에 대한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며 오히려 면회간 가족들을 격려 하더라는 말로 얘기를 끝마쳤다. 순간 같이 앉아 음식을 먹고 있던 나와 또다른 지인은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어찌보면 별것도 아닌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지만 깊이 생각해 보면 정말 훌륭한 엄마가 분명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얘기는 비단 자신의 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나라에 바친 전 국민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아름다운 말이라 생각했기에 절로 박수가 나왔던 것 같다.

여친을 지켜주겠다는 엄마의 약속 한켠에는 분단된 조국 대한민국을 잘 지켜 달라는 간절한 바램이 녹아 있었을 것이다.

군인이던  아들과 엄마와의 약속은 실제 그대로 이행됐다. 아들은 군대에 가 있었지만 아들 대신 엄마가 그 여친을 자주 불러내 쇼핑도 같이 하고, 수시로 집에 초청해 정성드려 만든 음식도 가족들과 함께 먹기도 했다고 한다.

엄마의 정성 덕분인지 아들은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올 봄 집으로 돌아왔다. 21살 이던 걱정어린 아들은 이제 어언 23살의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해 내년 봄 복학을 위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여친은 지금도 아들과 변함없이 잘 지내고 있으며, 학교 졸업 후 적당한 시기를 봐서 결혼까지 하기로 양가 모두 약속한 상태라고 한다.

엄마의 이 아름다운 약속은 한 가정의 행복을 떠나 대한민국을 지키는 수호자로서의 아들을 훌륭하게 탄생시킨 것이다. 국 복무 중인 아들을 향한 부모의 작은 정성 하나가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애국 보다 어찌보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깊어 보인다. 그러기에 아들과의 약속은 너무나 아름다워 보일 수 밖에 없다.

6.25 전쟁 발발 67주년이 된 지금의 대한민국은 포성이 들리지 않는 잠시 휴전 속의 전쟁 중이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전쟁의 위험 속에 장병 한 명 한 명의 몸은 온 국민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그 자체다. 이런 의미에서 군 복무 중인 대한의 아들들이 더 마음편히 나라를 위해 헌신 할 수 있도록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 몫은 모든 국민들에게 있다.

거제는 6.25발발 67주년을 맞아 전쟁 당시 북한군 15만명과 중공군 2만명, 의용군과 여성포로 300명 등 무려 17만300여명의 포로를 수용했던 곳이다. 유일하게 지구상에 남아 있는 동족상잔의 비극 현장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제에서 다시 떠올려 보는 6.25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던져 준다.

"너는 나라를 지키고 나는 너 여친을 지키겠다"고 아들에게 약속한 어머니의 아름다운 약속얘기가 폭염속의 가뭄을 단비로 적혀 주는 청량제와 같아 듣기에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