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경춘 편집국장

이 아름다운 계절에 지난 여름이 유난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던 폭염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의 위력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에다 국정농단으로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던 대한민국의 어지러운 정치사는 올 여름 폭염 보다도 더 뜨겁고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 스러웠다.

아직도 북핵 사태로 한반도가 사상 유례없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는 보도가 수돗물처럼 흘러 나오지만 그래도 견딜수 있는 것은 세월이 약이기 때문일까...?

이른아침 눈을 뜨니 벌써 화창한 햇살이 창문을 뚫고 거실까지 스며든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휴대폰을 열어보니 뜻밖의 슬픈 소식이 메시지로 남아 있었다. 평소 잘 알고 지냈던 검찰청의 A 검사 아버님께서 소천 하시어 울산영락공원에서 31일 발인을 한다는 내용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으로 불리는 검찰청의 현직 검사 부친이 상을 당했는데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인 것 처럼 구느냐고 의문을 던질 사람이 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고나면 그 생각이 금방 바뀌게 돼 있다. 비록 나 혼자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감동적이었던 그 순간은 영원히 가슴 속에 큰 교훈으로 남아있다.

얘기는 필자가 국제신문 기자로 근무 할 시절인 16년 정도로 거슬러 올라 간다. 통영 거제 고성지역을 책임지고 있을 당시 통영지청에 근무하고 있던 검사 한 분을 만났다. 미혼이었던 이 검사는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비리를 엄단하는 일에는 그 누구 보다도 강한 의지를 보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통영지청 관내 공직자 비리로부터 사회의 부정부패를 과감하게 척결해 나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대한민국 검찰상을 엿볼 수 있었다. 당시 비리 연루 공직자들은 오금을 펴지 못한 채 겁에 질려 벌벌떨었다. 오직했으면 이름만 들먹여도 알 수 있는 검찰 출신의 힘 있는 모 국회의원에게 부탁해 사정 강도를 줄이고 수사를 중단해 달라는 요청 까지 했다는 소문이 나 돌 정도였을까...?

부정부패에 대한 날카로운 A 검사의 칼날은 가차없이 사회정의 실현과 약자편에 서서 그 힘을 발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회가 어지럽고, 있는 자가 권력의 힘을 빌려 약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서 A 검사의 일화는 통영지청 주변에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검사만 있으면 있는 자가 권력에 붙어 힘 없는 약자와 서민들을 괴롭히는 일과 억울하게 당하는 일이 없을 것이란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 누구 보다도 국가관이 강했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던 A 검사는 어느날 임기를 마치고 경기도 수원지검으로 발령이 나서 떠났다.

그런데 수원으로 떠나는 날 필자는 또다른 감동을 받았다. 첫번째 감동은 창원지방법원과 창원지방검찰청 법조출입 기자를 했던 필자가 A 검사의 남달라 보였던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노력과 열정이었다.

2번째 감동은 수원까지 초촐한 이삿짐을 싣고 떠나는 트럭 운전자로부터 받았다. 통영에서 이삿짐을 싣고 멀리 경기도 수원까지 올라가는 트럭의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바로 A 검사의 부친이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터다.

아들이 검사라고 해서 아버지가 이삿짐을 싣고 가면 안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당시만 해도 잘 나가는 현직 검사 정도면 주변에서 누군가가 이삿짐 옮기는 것 쯤은 얼마든지 도와 줄 수 있었던 시대였다. 지금이야 세상이 많이 바뀌어 이런 일이 없겠지만 이전 같으면 이 정도 배려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던 시기였다.

그런데 뒤에  이삿짐을 손수 싣고 갔었던 분이 바로 A 검사의 부친이란 얘기를 전해 듣는 순간 남다른 감동을 받을수 밖에 없었다. 소탈하기로 소문났던 A 검사는 이사 비용 마저도 아끼기위해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들의 이삿짐을 실어주겠다는 아버지의 애뜻한 고집을 꺾지 못했던 것 같았다.

A 검사의 부친은 당시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분이셨다. 자랑스러운 아들의 이삿짐을 직접 실어주고 싶은 심정에서 힘들어도 먼 길을 다녀왔는지 알 수 없지만 훌륭한 검사 아들과 더 훌륭해 보이는 아버지 사이의 일화는 지인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 될 것이다. 주변 여러 지인들에게 감동을 줬던 일화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만한 이유가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이런 부친을 아들은 지인들 앞에서 항상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생각 했다는 점이다. 지금도 그 때 자주 만났던 지인들은 이 얘기를 가끔씩 꺼내곤 한다.

이런 존경스러운 어른께서 엊그제 소천 하신 것이다. 울산영락원에서 오랜만에 만난 A 검사는 부친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상주인 A 검사와 잠시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수원지검으로 떠나던 그 날 얘기가 나도 모르게 튀어 나왔다.

돌아가신 선친께서 이삿짐을 싣고 가셨다는 얘기였다. "그런일이 있었지요..." A 검사는 착잡한 마음으로 지난 날을 회상하며 누구 보다도 훌륭한 아버지였던 선친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현재 A 검사는 주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모 검찰청 차장검사로 부임해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그를 알고 있는 지인들은 훗날 나라를 위해 더 크고 많은 일을 해주길 바라고 있지만 우리들만의 욕심인지 모른다고 웃을 때도 있다.

권력 있는 누군가는 출세를 위해 버젓한 처갓집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지만 그는 달랐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냥 순수한 반려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도 아름답다고나 할까...

훌륭한 아들을 둔 더 훌륭해 보였던 부친은 이제 영원한 안식처로 떠났다. 좋은 곳에서 영면하시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 뿐이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영면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