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막차’ 신뢰·위상 세계가 기립박수


11일 오후(현지시각) 폐막한 제61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김기덕(44) 감독이 〈빈집〉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이번 수상으로 김기덕 감독은 지난 2월 열렸던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사마리아〉로 감독상을 받은 데 이어 한해에 세계 3대 영화제의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영화제의 감독상은 황금사자상, 심사위원대상 다음으로 비중 있는 상으로 2002년 이창동 감독(〈오아시스〉)에 이어 한국 감독으로는 두 번째 수상을 기록하게 됐다.

영화제 개막 뒤 ‘깜짝 상영’ 형식으로 경쟁부문에 뒤늦게 합류한 〈빈집〉은 〈섬〉(1999)과 〈수취인불명〉(2001)에 이어 김 감독의 세 번째 베니스 경쟁부문 진출작으로 빈집을 전전하며 살아가던 남자가 우연히 들어간 저택에서 남편의 폭력으로 고통받던 여자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한편 올해 베니스영화제의 황금사자상은 낙태 문제를 다룬 영국 감독 마이크 리의 〈베라 드레이크〉가 받았으며, 심사위원 대상은 안락사를 소재로 한 스페인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마르 아덴트로〉(아웃 투 시)가 수상했다.


■ ‘깜짝 막차’ 신뢰·위상 세계가 기립박수

김기덕 감독이 〈빈집〉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의 감독상을 수상함으로써 한국은 베를린 감독상, 칸 심사위원대상(박찬욱 감독 〈올드보이〉) 등 올 한해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본상을 받는 기록을 세웠다. 감독 개인으로서도 한 해 두 번이나 감독상을 받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일이다. 3대 영화제는 경쟁부문에 같은 영화를 초청하지 않기 때문에 김 감독처럼 ‘가공할’ 속도로 영화를 완성하지 않고서는 두 영화제의 경쟁후보에 나란히 오를 수 없다.

〈빈집〉은 이번 베니스영화제에 ‘깜짝 상영’으로 막차를 탔지만 촬영이 완성되기 전 이미 경쟁부문에 초청될 거라는 소문이 ‘기정사실’로 돌았다. 이는 김 감독에 대한 영화제 쪽의 높은 신뢰를 보여주는 것으로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른 김 감독의 위상을 드러낸 예다. 영화제 상영 뒤에는 외국 언론들이 매기는 별점에서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으며 빼어난 미장센과 시적인 화면이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아 “한국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라고 불리면서 황금사자상(대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시상식에서 호명받은 뒤 김 감독이 〈하류인생〉으로 경쟁부문에 함께 진출한 임권택 감독에게 정중하게 악수를 청하고 무대에 오른 뒤 “지금 제가 인사를 드린 분이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가장 오랫동안 영화를 만드신 분”이라고 소개하자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두 감독에게 긴 박수를 보냈다.

수상 뒤 “이 영화를 만든 스태프들과 사랑하는 가족과 제가 살아온 인생에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짧게 소감을 말한 김 감독은 갑작스런 수상소식으로 급하게 시상식장에 도착했던 베를린영화제 시상식 때보다 한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영화 속에서 ‘유령 연습’을 하는 태석처럼 눈을 그린 손바닥을 관객들에게 펼쳐 보이며 “이 손바닥의 의미는 영화를 보신 분들만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해 관객의 환호를 받았다.

정규 학교교육이나 영화교육을 받지 않고 혼자 프랑스에서 그림공부를 하다 영화계에 뛰어든 김 감독은 1996년 〈악어〉로 데뷔한 뒤 8년 동안 늘 10억원 미만의 저예산으로 11편의 영화를 완성했다. 이 가운데 5편이 3대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진출했으며 〈빈집〉으로 두 번째 감독상을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다지게 됐다. 총 10억원의 예산으로 19일 동안 촬영을 마친 〈빈집〉은 10월 중 국내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