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 사람들
친일미술단체들, 전쟁동원에 '회화보국'나서[특집] 경남.부산 친일예술인 연구 2 미술과 연극영화단체들
전갑생  |  jkh2000kr@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4.11.04  00:00:0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미술단체의 '총후결전(銃後決戰)' 활동

조선미술가협회(朝鮮美術家協會)는  경성미술가협회(1941. 2. 22 창립)의 후신으로 조선을 대표하는 미술단체. 1943년 1월 예술가단체연락협의회 산하단체로 가맹했다. 미술협회는 "국가의 비상시국에 직면하여 신체제 아래서 일억일심(一億一心)으로 직역봉공(職域奉公)하여야 할 이 때, 미술가 일동도 궐기하여 서로 단결을 굳게 하고 또한 조선총력연맹에 협력하여 직역봉공을 다한다"고 선언했다. 사업은 반도총후미술전람회(半島銃後美術展覽會, 징병기념), 선전 2주년 기념대회 등을 펼치기도 하였다.
국민총력조선미술가협회(國民總力朝鮮美術家協會)경남지부는 1941년 11월 10일 경남지부 발기인 모임을 갖고 산형(山形靜智) 부산공업학교장의 발기로 결성하였다. 사무소는 산형(山形)씨 자택에 두었다. 11월 19일 결성식에서 조선미술가협회 경남지부는 "내선일체 미술을 통하여 직역봉공에 매진하고 국민총력운동의 사명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19일 오전 10시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남지부 결성식에는 임원으로 선출된 지부장 경남도 내무부장, 부지부장 도 총력과장, 고문 도지사·부산부윤·부산헌병분견대장 등이 참석하였으며, 경남도내 거주하는 일본화(동양화), 서양화, 조각, 공예 등에 종사하는 자 수백명이 참석하였다. 경남지부는 목적 달성을 위해 미술 사상 선도, 애국운동, 강연회, 좌담회 및 전람회 개최 등을 수시로 하기로 하였다. 이날 경남지부 평의원으로 선출된 일본인과 조선인은 산형정지(山形靜智), 천창옥풍(淺倉玉豊), 단강웅(片岡雄), 포포준랑(布浦俊郞), 송포필웅(松浦筆雄), 인촌십랑(仁村十郞), 무원?(茂原?), 한학준(韓學俊, 이상 이사 겸무), 전산무( 山茂), 달목익생(達木益生), 정상희유(井上喜由), 서촌의인(西村義人), 포전백양(浦田白洋), 석정정웅(石井正雄), 도변의웅(渡邊義雄) 등이다.

단광회(丹光會, 1943. 2)는 부산출신의 임응구(林應九, 伊藤應九)를 비롯해  김인승, 김만형, 손응성, 심형구, 박영선, 이봉상 등이 참여하였다. 다음은 단광회 창립을 보도한 기사다.

"조선 양화단의 중진인 조선미전 참여인 산전신일(山田新一)를 중심으로 이번에 새로 미술단체 단광회를 조직하고 오는 4월에 제1회 작품발표회를 개최키로 되었다. 회원은 조선에서 모두 중견작가로 활약할 뿐 아니라 내지(內地, 일본)의 화단에서도 활약하는 신진 기예자 21명이 모였다([新洋畵團體 丹光會 誕生], {每日申報}, 1943. 2. 3.).

단광회는 [조선징병제실시]라는 100호 크기 작품을 공동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김인승, 산전신일(山田新一)을 비롯해 모두 19명이 참가해 완성한 이 작품은 4월 회원전 때 일반 공개했으며 1943년 6월 14일 [조선징병제실시]를 공동제작하여 일본군사령부 조선 애국부에 기증하였다. 이 작품은 "단광회에서는 이 광영의 제도를 길이 기념하고자 회원 19명이 힘을 합하여 나라에 봉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어 기쁨에 넘친 반도의 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는 1922년 1월 제1회를 시작으로 1944년 6월 23회까지 열렸다. 
선전은 "유치한 조선미술을 보육조장(保育助長)하고, 정조(情操)를 고아케 하며, 민중의 사상을 순화케 하여 사회 교화의 일조하기 위한다"고 목적을 정했다. 경남·부산 지역 출신 화가들은 20여명에 이른다.

부산미술전람회(釜山美術展覽會)는 경남·부산의 출신자들을 중심으로 1931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매월 11일 부산일보사 주최로 개최되었다. 1941년 11월 실시된 제11회 부산미술전은 친일단체 국민총력부산연맹 후원으로 실시되었다. 부산미술전람회에 입선했거나 특선한 작가들은 양달석(거제)·서성찬·김남배·우신출(부산) 등이다.

춘광회(春光會)는 부산지역내 미술가 모임으로  1939년 결성되어 1942년까지 모두 3회의 그룹전을 개최했다. 1941년 8월 22일 춘광회는 제2회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춘광회 회원들은 국민총력조선미술가협회 경남지부 회원들로 조선미술전에도 입선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다음은 춘광회에 대한 신문보도 내용이다.

"부산부내 조선인 청년 양화가(서양화)들이 결성한 춘광회는 오는 22일부터 3일간 전람회를 개최한다. 작년 12월 제1회 작품전람회를 개최하여 호평을 얻었으며, 부산미술전에 매년 출품한 전산무( 山茂), 우신출(禹新出), 이일동(李一東) 3명은 올해 선전(鮮展)에 입선하였다. 금자호일(金子浩一), 전산무( 山茂), 우신출(禹新出), 이흥상(李興相), 이일동(李一東), 박정수(朴貞守)"

그 외 미술대회로, 남선미술전람회(南鮮美術展覽會)는 부산일보 주최로 1941년 10월 11일부터 19일까지 개최되었다. 이 전람회는 '미술보국(美術報國)'을 위해 "국민총력운동에서 문화면의 보국을 위해 제1회 전람회를 개최 총후(銃後)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일이다"며 1945년까지 이어졌다.

전쟁을 선동하는 연극과 영화

조선연극협회(朝鮮演劇協會)는 1940년 12월 22일 창립되어 이서구(회장), 유치진(이사, 거제) 등이 참여하였고, 27개 극단과 300여명의 회원을 두었다. 연극협회는 "연극의 건전한 발달과 연극인의 질적 향상을 꾀하여 문화의 새로운 건설에 공헌하고 동시에 연극을 통해서 내선일체의 실을 올리겠다"는 목적을 표방하며 출범한 연극단체의 통합기구였다. 사업으론 연극보국주간 실시, 이동극단 조직, 국민극 희곡상 제정 등을 실시하였다.

조선연극문화협회는 1942년 7월 26일 창립한 조선의 최대 연극조직이다. 문화협회는 거제출신의 유치진이 상임평의원을 맡았으며, 36개 극단과 930명 회원들이 참여했다. 사업으론 국민연극경연대회(총 3회)를 개최하였다.

국민연극연구소는 1941년 3월 16일 창립되어 함대훈 소장을 중심으로 정인섭(예술개론), 유치진(연출론) 등이 참여하였다. 이 단체는 '우수한 연극인의 육성과 그 정신의 함양'을 목적으로 내걸고, '국민연극'을 담당할 인력을 양성하였다. 
조선극작가동호회는 1940년 12월 창립되어 유치진이 회장을 맡으면서 조선연극협회 회원중 극작가들로 구성되었다. 동호회는 "신체제에 즉응(卽應)해서 명랑 건전한 작품을 각 극단에 제공"하고자 나섰다.

경남·부산 지역의 연극·영화단체와 활동은 국민총력 부·군·읍·면 연맹에서 소인극과 연예대회, 가극, 희극, 영화회 등을 개최하여 내선일체와 '반공방첩'을 강조하였다. 1939년 11월 20일 통영 반공협회 주최로 통영 대화정 교회 목사 이정심(李淨心)이 청년회원들을 중심으로 방공방첩 소인극을 열었으며, 같은 해 11월 24일 기독청년회원들은 반공방첩연예대회를 열어 '간첩의 최후'라는 연극을 펼쳤다.
또한 1940년 2월 하동읍 기생조합장 오정진(吳正珍)은 기생들과 함께 부산극장에서 조선가극제를 열고 이익금 37원을 국방헌금으로 부산경찰서에 내기도 했으며,  1940년 2월 22일부터 3일간 함안 가야경방단은 전선희극(全鮮戱劇)대회를 개최하여 체질향상과 심신훈련을 다지기도 했다. 
국민총력부산연맹 극단은 1941년 8월 23일 관계자 회의를 열고 31일 결성식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극단의 명칭은 '국민총력부산연맹 연극협단(演劇協團)'으로 단장 부산부 총력계장, 부단장, 이사 , 총무, 연기, 문예, 미술, 음악 각 부서를 설치하고 단원은 부산 극단 외에 개인들이 가입할 수 있도록 하기로 하였다.

영화부문에서 조선영화인협회(1939. 8 결성)는 서월영(부산 출신, 배우, 협회 이사) 등이 참여하여 "영화를 통하여 내선일체의 실을 거둠을 기한다"고 성격을 규정하고 친일활동을 벌였다.
또한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는 "조선총독부 당국의 내명을 받들어 (중략) 국가 목적의 보급, 국민 정신의 작흥 함양, 문화의 향상 육성, 사상의 선도 등 국가적 중대 사명을 수행하고 (중략) 내지의 영화 체제 방법에 순응코자 (하략)" 한다고 말했다. 서월영은 연기과 대표로 참여하였다. 

경남·부산 각 부·군·읍·면은 조선지원병 제도를 그린 [그대와 나(君の僕)] 영화회를 개최하여 국방헌금을 모금하는 도구로 활용하였다. 특히 부산교육회는 영화연맹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전쟁도구로 활용된 예술단체들

부산사진문화방첩연맹(釜山寫眞文化防諜聯盟)은 사진분야에서 '방공방첩'을 선전·선동하고자 창립되었다. 경남·부산 지역의 사진가 310명이 모여 1941년 5월 18일 부산부 공회당에서 결성식을 가졌다. 이날 부산헌병분대장, 진해요항사령부 사령관, 부산경찰서장 등이 참석하고 궁성요배, 묵도, 황국신민의 서사제창, 취지설명, 경과보고 등을 마치고 임원에 길천목이(吉川牧二) 회장, 상임이사에 무천주평(武川周平), 고은재(高岡殷載) 등을 선출하였다. 연맹은 부산의 읍면지역에서 지원병으로 '출정'하는 가정을 방문하여 가족사진을 촬영하는 활동을 벌였다. 

지역의 만화가 출신들은 확인되지 않지만 대구 대화숙 주최로 국민총력경남도연맹과 부산일보 후원으로 국방만화전을 부산(삼중정 화랑), 진주(진주부기념회관) 등지에서 개최하였다. 대화숙은 '국방사상과 시국인식 철저하기 위해' 국방만화전을 열었다.

전갑생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단광회가 그린 '조선지원병제' 공동창작품 전시회에서. 뒤에 보이는 그림.
최신 인기기사
1
삼성重, LNG 연료추진 원유 운반선 10척…'7,513억원' 수주
2
[사건] 거제 공중화장실 영아 유기한 30대 여 불구속 송치
3
삼성重, 2,255억원 규모의 LNG운반선 1척 수주
4
김한표, 국무총리에게 국립난대수목원 조성지 선정 촉구
5
김해연 전 도의원 청도시 투자 사절단 맞아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인터넷신문 | 등록번호 : 경남 아009호 | 등록연월일 : 2005년 11월 10일 | 제호 : 거제타임즈 | 편집인 : 박현준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현준
발행인 : 김형택 | 발행연월일 : 2003년 4월 16일 | 발행소: 경남 거제시 서문로 72 (고현동) 태원회관빌딩 6층ㅣ전화: 055-634-6688 / FAX: 055-634-6699
Copyright © 거제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문의메일 : geoje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