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스무 살. 새내기 여대생의 교통사고. 신체장애 1급, 지적장애 1급. 꿈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던 언니는 더 이상 가족의 희망이 될 수 없었다. 슬픔이고 아픔이며 고통이었다. 응급수술이 끝나고 여러 날이 지날 동안 언니는 의식이 없었다. 산 사람이라 볼 수도 죽은 사람도 아닌 그 경계선상에서의 고통은 남겨진 이들의 몫이었다. 닷새 후 눈을 떴지만, 언니의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얀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 따스한 기억들.
힘겹게 얻은 외동딸을 객지로 보내야하는 이모는 딸과의 헤어짐에 익숙하지 않았다. 언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다 울기를 반복하며 추억 속의 이야기를 나눈다. 언니가 초등학교 때 한달 사귄 남자 친구의 이름이며, 중학교 때는 남자 동급생과 선배에게 사귀자는 고백을 들은 이야기도 언제나 웃음을 안겨준다. 따뜻한 그 소리는 닫힌 문틈으로 흘러나온다.

—언제까지 내 사랑이어라 내 사랑이어라.
언니의 예전 모습은 오간 데 없고, 흔들리는 초점과 나목과 같은 팔다리의 버둥거림이 가끔씩 명치를 누른다. 미우나 고우나 버릴 수 없는 것이 자식인 것을. 매일 고단한 일상에 기저귀를 갈아주며 엉덩이를 밀치더라도, 딸아이가 있어 자신이 살아낼 이유를 찾는 모정에 가슴이 울린다.

—거리엔 다정한 연인들 혼자서 걷는 외로운 나.
때때로 우리에게 디밀어진 고통을 삼키며 술에 취해 비틀거리듯 거리로 나선다. 낯익은 눈동자, 그리운 얼굴 하나 마주하지 못하는 현실. 거리로 내몰린 것은 육체인지 정신인지 가늠되지 않는다. 세월은 이십 년을 넘겼건만 현실은 제자리걸음일 뿐.

—아름다운 사랑 얘기를 잊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지나간 추억만 붙잡고 있을 수 없다. 매무새를 다듬고 거울을 들여다보자.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것. 그것이 현실이다. 사랑이란 미래도 과거도 아닌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언니의 머리를 감겨주고, 손톱을 잘라주고, 나직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바람을 들려주는 거다. 오늘부터.

—그대 떠난 봄처럼 다시 목련은 피어나고.
병석에 누워 있어도 봄이면 마당 가득 꽃이 피고, 언니가 좋아했던 목련도 합장을 하며 하늘을 우러러 본다. 합장했던 손끝에서 꽃잎을 피어 올리듯 오늘도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 닫힌 언니의 방문이 열리면 봄이 날아들고 여름과 겨울이 드나들면 좋겠다.

—아픈 가슴 빈자리엔 하얀 목련이 진다.
목련이 지는 것은 이듬해 새 생명으로 거듭남을 위한 진혼곡인 것을. 애써 외면할 일도 가슴 아파할 일도 아님을 봄의 끝자락에서 덜어내어 본다.

 
❖ 약 력 ❖
• 부산 출생
• 2010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 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 한국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