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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이양주]'선방 문고리'거제대학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서정자  |  jjtime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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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1.11.15  08: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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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방 문고리 
                                                                            이 양 주
   
 
“저게 뭐로 보입니까?”
“바위로 보입니다.”
바위를 보고 바위라고 대답했는데, 그녀는 목청껏 크게 웃는다. 이번엔 내가 되받아 묻는다.
“저게 뭐로 보입니까?”
“부처 눈엔 부처, 돼지 눈엔 돼지로 보이는 거겠지요.”

우리는 마치 어설픈 선문답이라도 흉내 내는 양 주거니 받거니 서로 웃는다. 절에서 만났기 때문일까. 그녀와 나는 오래 전부터 함께 지내와, 서로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는 사이처럼 짧은 시간 안에 친해졌다. 오늘은 수덕사를 품고 있는 덕숭산 꼭대기에 있는 정혜사를 순례하는 날이다. 이 곳 지리에 훤한 그녀가 수덕사 대웅전 앞에서 손으로 가리키는 정혜사를 올려다보니 까마득하다. 천 계단쯤 올랐다 싶으면 당도할 거란다. 천 계단이라. 그녀가 말하는 천이라는 개념도 마음의 수치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른 아침 인적이 드문 시간이라 산길은 참으로 고요하고 평화롭다. 산에는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지만 착한 것들이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산길에만 들어서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도 제 이름을 불러주지도, 얼굴 한 번 쳐다봐 주지도 않지만, 섭섭해 하거나 불평 한 마디 없이 그냥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생명들. 나도 그들과 같은 작은 풀꽃이 되어본다. 그리고 그들과 이웃이 되어 조화로운 삶을 이루고자 마음을 낮추어본다.

사진작가인 그녀는 가던 길을 멈추고 길 옆 키 작은 야생화, 햇살 내리는 나뭇가지 사이에 걸린 푸른 하늘, 물에 뜬 나뭇잎들, 산에 사는 고운 것들을 카메라에 담느라 열심이다. 그녀에겐 바위도 유정물로 보이는 것 같다. 나는 무심코 지나칠 것들인데, 들여다보고 살펴보는 그녀가 궁금하고 한편으론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와 걸음의 속도를 맞추어 어깨 너머 카메라의 각도를 나도 어림 재어본다.

“사진작업은 참 좋은 공부예요. 어떤 대상을 담으려고 할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을 버려야 할 건가를 선택하는 거랍니다.” 담기 위해서 버릴 것을 먼저 선택해야 한다는 그녀의 말이 경전의 한 구절처럼 다가온다. 나라면 무엇을 버리고 담을까.

정혜사는 경허와 만공선사의 법력을 이어가는 청정수행처이다. 스님들의 안거 기간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다. 마침 안거가 해제 되었는지라 작은 쪽문은 열려 있었고 용맹 정진하셨던 스님들께선 하산하셔서인지 경내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관음전에서 내려다 본 뜰은 참으로 고적하고 아름답다. 누가 저리도 깨끗이 비질을 해 놓았을까. 아직도 비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정갈한 뜰을 보니 내 마음의 티끌도 쓸려가는 느낌이 든다. 조용조용 걸음을 옮기며 한국 근대 선방 중 선풍이 살아있기로 소문난 능인선원으로 다가갔다.

댓돌 위에 고무신 한 켤레. 아직도 누군가 떠나지 못하고 화두를 붙들고 계신 모양이다. 때 묻지 않은 하얀 고무신의 가지런한 모습이 신발 주인의 성정을 짐작케 한다. 닫힌 선방 안에서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드는 문살을 바라보며 답을 구하고 있을 선승의 눈빛이 궁금하다. 방해가 될세라 마루턱에 앉아 조용히 문고리를 두 손으로 잡고 머리를 기대어 본다.

삶은 그동안 나에게도 수많은 질문을 던졌으리라. 어머니의 죽음, 이별, 우정, 사랑, 그런 것들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진정한 답을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하였었나. 제대로 질문을 하기는 해 보았나. 삶이 위로하고 격려하며 때론 아픈 질책으로 힌트를 주었을진대 어리석은 나는 늘 정답을 피해가며 살았던 건 아닌지. 단지 산다는 것 외에 멋진 혜답이 있기나 한 것인가.

문고리는 세월에 손길에 닳고 닳아 반질반질하다. 얼마나 많은 선승들이 이 문고리에 마음을 잡고 놓았을까. 안과 밖, 여기와 저기, 너와 나, 닫힘과 열림, 수많은 의문과 해답의 문턱에 문고리가 있는 게 아닐까. 나라는 경계를 넘어 또 다른 세상으로 나오게 해주는 고마운 손. 문고리는 지혜의 상징일까. 사랑과 자비의 의미일까. 깨달음의 상징일까. 과연 문고리를 잡고 놓는 마음이 달랐을까. 무심해 뵈는 문고리에게 물어보고 싶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 나에게 저만치서 그녀가 묻는 것 같다.

“그게 뭐로 보입니까?”
“문고리로 보입니다.”
우리는 도반이 된 듯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오래 된 보리수나무 옆을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본 뒤 넙적 바위에 걸터앉았다. 저 아래 내가 올라왔던 세상이 보인다. 툭 트인 하늘. 바람은 걸림 없고 햇살은 청명하고 다사롭다. 그녀에게 소리선물을 하고 싶어진다. 이황 선생의 < 청산은 > 을 시조창으로 부른다. 소리는 허공중에 사라진다. 그녀가 내게 합장해 주었다.

나도 합장한다.
이제 하산해야 하리. 빈 뜰과 선방을 뒤돌아본다. 그녀가 카메라를 챙겨든다. 무엇을 담았을까. 나는 정갈한 뜰 하나, 선방 하나, 그리고 내 마음 속에 품고 싶었던 문고리를 챙긴다. 그리고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간다. 살아야 할 세상이 점점 가까이 보인다.

☐ 약력 ☐
*경남 밀양 출생
*거제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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