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꽃

                                                                                                                이 양 주

찬 서리 내리는 가을날 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외롭게 피어나는 국화를 보며, 선비의 절개를 그려낸 이정보님의 시 ‘국화야’를 아이들과 함께 뜻을 헤아려보고 노래하는 시간을 가졌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 봄날 많은 꽃들은 다투어 계절을 노래하며 피지만, 때를 기다려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인내하며, 마침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국화의 오상고절. 우리의 삶도 국화의 것과 닮지 않았을까, 함께 살펴보기로 하였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서릿발은 무엇일까. 자신의 게으름과 생활습관, 문방구의 유혹, 친구들과의 경쟁 등, 다양한 얘기가 오갔는데 가장 강력한 서릿발은 놀랍게도 컴퓨터 게임, 텔레비전, 휴대폰 같은 것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이들은 그런 유혹의 시련에서 분별해서 잘 이겨내야 한다고, 어리지만 마음의 방향을 제법 지혜롭게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정보님에게 국화는 그냥 꽃이 아닌 마음의 의미였으니, 우리도 마음속에 꽃이 있나 살펴보고, 그 꽃을 그려 오라고 주문하였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가장 많이 피어 있는 꽃은 해바라기였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이 활짝 웃는 웃음이 해바라기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 무궁화, 백일홍, 장미, 수국, 은초롱꽃, 네잎클로버……순이었다.

사과 꽃을 그려 온 아이가 있었다. 사과를 무척 좋아하는 제 속내를 알고 웃었더니 생각하는 사과나무가 되고 싶다나. 꽃에 대한 많은 얘기가 오갔다. 우리 동네 거제도의 동백 얘기도 나왔고, 매화 난초 대나무 등, 사군자의 성정에 대해서도 함께 공부하였다. 연꽃의 덕목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그림을 제출하지 않은 나의 꽃이 궁금한지 묻는다.
“선생님은요?”
내 가슴 속을 곰곰 들여다보는 듯하더니, 초등학생은 국화, 중학생은 매화라며 의견이 갈라져 분분하다. 내 꽃을 가지고 서로 목소리를 높인다. 진정시켜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남자아이 하나가 묘한 웃음을 띠며 끼어든다.
“할미꽃!”
“너!”
내가 주먹을 쥐며 녀석을 쳐다보자, 아이들이 모두 까르르 웃는다.

얼마 전 제자의 결혼식에 초대를 받았다. 어릴 적 그 아이를 안으면 볼에 닿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씨앗의 깃털 마냥 부드러웠다. 뼈대는 가늘어 약해 보였지만 참으로 강한 아이였다. 축하 카드 속에, 저를 닮은 민들레의 포공구덕(蒲公九德)에 대한 글귀며, 이 담에 민들레 같았던 저를 닮은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써 넣어 주었더니 무척 감동하였다.

나는 우리 마음속에도 꽃과 나무 같은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향기가 느껴지는데 그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동질감응. 우리가 사물을 보고 감응한다는 건 자신의 속에 그와 비슷한 동질의 존재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내 속의 꽃을 닮은 것이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내 속에 아름답고 진실한 존재가 있다는 걸 안다는 건 기쁜 일이다. 그것을 닮고 싶고 하나가 되고 싶다는 건 삶의 또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꽃도 사람도 누군가가 제 이름을 불러주고 쳐다봐 주었을 때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끼며 그 보살핌 속에 더 환하게 피어나는 것이리라. 무엇보다 사랑의 물을 필요로 하며 그 물이 없으면 시들어버릴 것이다. 내 속의 꽃과 네 속의 꽃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 세상이 온통 꽃밭이라면 얼마나 눈부실까.
“자, 눈 감고,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 자신의 꽃을 생각하자.”
아이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노래 부른다. 언젠가는 제 마음속에 꽃 한 송이 피워 보겠다는 마음으로.
“국화야…….”

* 포공구덕(蒲公九德) ; 민들레는 다른 이름으로 ‘앉은뱅이 꽃’이라고 하는데, 그 잎이 바닥에 달라붙다시피 하여 자라는 탓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한다. 예로부터 아이들이 공부하던 서당을 ‘앉은뱅이 집’이라고도 했는데, 서당에서는 뜰에 민들레를 심어 민들레가 지닌 아홉 가지 덕목을 평소 학생들이 보고 배워 생활의 교훈으로 삼도록 하였다. 포공(또는 蒲公英)이란 말은 민들레의 뿌리 또는 민들레를 지칭하는 말로서 민들레의 습성을 비유하여 생겨난 말이다. 서당 훈장님을 ‘포공’이라고 높여 불렀는데, 민들레가 스승처럼 훌륭한 덕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민들레를 스승에 비유하여 그렇게 부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배워야 할 민들레의 아홉 가지 덕목을 ‘구덕(九德)’이라 하였다.
• 마소와 수레에 짓밟혀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끈질긴 생명력이 있으니 인(忍)의 덕
• 뿌리를 자르거나 캐내어 며칠을 말려도 싹이 돋아나니 강(剛)의 덕
• 돋아난 잎사귀 수만큼 꽃이 차례를 지켜 한 송이씩 피어나니 예(禮)를 아는 덕
• 사람들이 여린 잎이나 뿌리를 먹으니 온몸을 다 바치는 쓰임새의 용(用)의 덕
• 꽃에는 꿀이 많아 벌 나비가 모여드니 정(情)의 덕
• 잎이나 줄기를 자르면 하얀 젖이 나오니 사랑을 베푸는 자(慈)의 덕
• 약재로써 머리를 검게 하여 늙은이를 젊게 하니 효(孝)의 덕
• 모든 종기에 민들레의 즙이 으뜸이니 인(仁)의 덕
• 씨앗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스스로 번식하고 융성하니 용(勇)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