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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태] 숨은 그림
거제타임즈  |  geojetim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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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3  1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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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은 그림


                                                                                                                                      서 용 태

   
 
이건 악몽이다. 별것 아니라는 의사의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대에 올랐다. 방광 입구에 아주 작은 종양이 발견되어 내시경 시술로 제거한 것이다. 고통이 없었던 것은 하반신 척추 마취 덕분이었다.
그 악몽 같은 시간은 회복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하반신에 주사한 마취를 깨는데 무려 다섯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긴 시간동안 산송장이 되어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의사의 주의 사항을 이행해야만이 후유증을 방지할 수 있다는 데 그 지시에 따르지 않을 재간이 없다. 베개도 없이 다섯 시간 동안 반듯하게 누워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리를 구부려 세우거나 몸을 뒤척이거나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환자가 의사의 지시대로 하지 않으면 마취 성분이 뇌로 올라가 평생 심각한 두통환자가 된다는 경고를 듣고부터는 공포심마저 느껴야 했다. 그러니 어찌 산송장이 아니겠는가. 이 다섯 시간의 고통을 못 참아 여생을 두통으로 고생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오로지 내 의지에 달렸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가자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고통이 전해 온다. 몸뚱어리가 저려오는 것이다. 무협지라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오로지 벽시계 초침만 바라보면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것이다.
그러다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내었다. 조용히 눈을 감은 채로 본가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까지 사십여 킬로미터를 상상으로 걸어보는 생각이었다. 그러면 네 시간 정도는 쉽게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가능한 천천히 걸어가는 내 자신의 이미지를 그려놓고 전자 게임 하듯 걷기 시작했다. 고향마을을 지나 국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 집까지 왔다.
이제 시간이 많이 흘렀겠지 싶어 눈을 떠서 보니 십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상상의 세계에서 뇌의 회전이 그렇게 빠를 수가 있을까, 그 묘안마저 쓸모없게 되었다는 생각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아니, 내심 발광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이 순간 부귀도 영화도 더 바랄 것이 없다. 오로지 어서 시간이 흘러 목덜미에 포근한 베개 하나를 베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만이 뇌리에 가득할 뿐이다. 누가 세월을 흐르는 물에 비유했던가. 이건 흐르는 물이 아니고, 고인 물 그 자체다. 시간이 정체되어 흐르지 않는다는 느낌 밖에 없다.
지금도 순간순간 그 때를 추억처럼 떠올려본다. 행복의 정체가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악몽 같았던 다섯 시간이 다 지나고 목덜미에 베개를 고이는 순간이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 다섯 시간 동안에는 처자식도 떠오르지 않았으며, 명예라든지, 체면, 금전, 노후설계 같은 흔한 생각마저 만 리(萬里) 밖으로 달아난 상태였다.
그랬다. 불행이라는 것의 정체를 알고 나면 행복의 정체도 알게 된다. 불행은 형체를 갖춘 정형의 존재가 아니다. 바로 내 자신이 만들어낸 가상의 고통일 뿐이다. 생명을 지켜주는 저 태양, 폐부로 들었다 나갔다 하는 형체도 없는 공기. 나를 있게 한 부모님과 같은 인연에 대한 고마움. 이와 같은 소중한 모든 것들에 대하여 고마워 할 줄도, 감사할 줄도 모르고 흔하디흔해서 무의미한 존재로 여겨왔기에 불행은 알아도 행복은 아득히 먼 무지개로만 착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행복은 우리 주변에 지천으로 존재하며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악몽으로 받아들인 그 다섯 시간이 말해 주었다. 보잘 것 없는 그 베개 하나에도 행복은 숨은 그림처럼 존재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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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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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둔덕사람 2013-09-10 11:45:55

    마음이 극락을 만들면 극락이 되고 마음이 지옥을 만들면 지옥이 된답니다 님이 겪었던 다섯시간 동안 정말 괴로웠을 시간의 추억이 님이 보다 더 성찰할수 있도록 한것을 이해합니다 늘 좋은 글들을 먾이 남겨 주십시오 여럿이 함께 볼수 있도록 건강하십시오신고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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