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품에 위조성적서 첨부 대형조선소 등에 3년여간 17억 원어치 팔아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가 드러나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가운데 조선 업계에서도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기자재를 대량으로 유통한 업체가 경찰에 붙잡혔다. 적발된 업체 중 한 곳은 국내 굴지의 중공업 회사, 화력발전소 등과 거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KNN캡쳐 사진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한국선급의 인증 기업인 S사 주물임을 표시하는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뒤 첨부해 납품하는 수법으로 거래처를 속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선급의 인증을 받은 S사에 부장으로 근무하면서 2개 조선 기자재 가공업체에 17차례에 걸쳐 몰래 위조한 시험성적서를 넘겨줘 41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또 이 씨는 이 기간 부인의 명의로 K사를 설립해 한국선급의 인증이 없는 업체로부터 구입한 주물을 다른 업체에 가공을 맡겨 완제품을 만든 뒤 위조 시험성적서를 첨부해 국내 중공업 회사에 41차례에 걸쳐 2500만 원 상당을 납품하기도 했다.

이 씨로부터 위조 시험성적서를 받은 업체에는 부산시 혁신기업, 지식경제부 좋은기업에 선정된 F사도 포함됐다. F사는 2011년 7월부터 지난 7월까지 국내 저품질이나 중국산 금속 주물을 이용해 기자재를 만들어 S사의 시험성적서를 첨부해 108회에 걸쳐 15억 원 상당의 부품을 납품했다. F사의 거래처 중에는 국내 화력발전소와 UAE 원전에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도 있었다.
 
특히 F사는 S사의 경쟁업체인 C사의 주물을 받아 사용하면서 S사의 위조 시험성적서를 이용하기도 했다. 회사의 임원진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묵인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회사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미인증 주물 업체에 자신들이 위조한 시험성적서와 같은 제품 번호가 새겨진 주물을 납품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생산한 제품의 내구성은 인증 제품보다 20~30% 떨어진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시험성적서 위조 후폭풍 부산·경남 조선업계 '발칵'
기자재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 탓에 조선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KR(한국선급)의 공신력만 믿었다가 저급 제품이 선박과 해양플랜트 등에 쓰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위조 업체 3곳 모두 본사가 부산과 김해이고 이들로부터 납품받은 업체가 부산 지역 대형 조선소 3~4곳과 부품업체 등 10곳이 넘어 부산·경남 조선업계가 비상에 걸렸다.

25일 부산·경남의 대·중형 조선소들은 기자재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에 따라 납품업체 명단을 파악하고 검사 계획을 수립하는 등 종일 분주했다. A조선소 구매팀 관계자는 "납품업체 명단을 검토 중인데, 혹시 저급품이 납품돼 선박 공기가 늘고 품질이 떨어질까 걱정이다"고 밝혔다.

부품 납품업체 명단 파악 검사계획 수립 등 분주
공기 지연· 품질 저하 우려
전문가 "이번 사건 계기 확실한 위조 방지책 필요"

위조된 시험성적서를 통해 납품된 제품은 중국산이나 국내 저가 제품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에 따라 충격이나 열에 쉽게 손상·변형될 가능성이 높다.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백점기 교수는 "해양플랜트시설은 정제 때 온도가 100도 이상 올라간다. 부품이 고온에 취약하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남의 대형조선소인 B사는 문제가 된 업체에서 1년간 총 12억 원 상당의 물품을 납품받은 것으로 확인돼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다. B사 관계자는 "해외 선주들이 발주한 해양플랜트나 상선 등은 해외선급의 인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며 "해양경찰이 사용하는 배를 비롯해 KR 인증을 받는 국내 선박 일부가 문제의 소지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대형조선소 C사 측은 "아직 문제가 된 업체 이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확한 진상 조사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의 기자재 업체들은 자칫 이 문제가 업계 전반의 문제로 비칠까 노심초사 하는 모습이다.

한 관계자는 "연루된 업체도 많지 않고 액수도 작은데 원전 부품비리처럼 마치 업계 전체가 그런 것처럼 침소봉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이번 사태로 인해 국내 조선 및 기자재 업체에 대한 불신이 확산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조선소들은 "인증받은 기자재라 하더라도 자체 품질검사를 하는 등의 대책을 평소 마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국선급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 되기 위해서는 신뢰성 확보를 위한 철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 전문가는 "그렇잖아도 해외 선주들은 영국 로이드선급이나 노르웨이선급 같은 해외선급의 인증을 선호하는데 걱정"이라며 "한국선급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확실한 위조 방지 대책 등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