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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수필:강돈묵]'백두옹(白頭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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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1.27  17: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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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옹(白頭翁)
                                   강 돈 묵

   
 
사람들은 식물의 잎을 보면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게 그거려니 한다. 아니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바라볼 뿐이다. 그것은 새 잎이 돋아날 때의 모양이 별다른 차이가 없기에 갖는 생각이기도 하다.

하지만 꽃을 피우기 위해 꽃대를 밀어 올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생각이 확연히 달라진다. 어떤 꽃이 필까 궁금해 하고 나름대로 추억 속에서 기억을 끄집어내기에 여념이 없다. 내가 할미꽃을 좋아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오래 전부터 고향을 떠나 이곳에 와서 살면서 내 집을 짓게 되면 반드시 고향동산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정원의 한 모퉁이에 내 고향에 피는 꽃들을 구해다가 심어 놓고 그리움을 달래겠다는 심산이었다. 그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꽃이 진달래와 할미꽃이었다. 굳이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내 어린 날의 기억 속에 선명이 살아 있는 것이 이 두 꽃이었다. 진달래는 꽃방망이를 만들어 용청배기가 보리밭골에 숨어 있다가 어린아이의 간을 빼어간다는 이야기가 뇌리에 남아 있었고, 할미꽃은 무덤가에서 할머니의 굽은 허리처럼 핀다는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다.

하여튼 이렇게 하여 집을 짓자마자 고향으로 가서 이 두 꽃을 구해다 심었다. 그런데 진달래는 내 집에 와서 두 해 동안 꽃을 보여주다 죽었다. 잔디밭 가장자리에 심어 놓았더니 아이들이 꽃을 따 버리기도 하고, 급기야 밟아서 부러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할미꽃은 해를 거듭할수록 포기가 커지고 많은 꽃대를 밀러 올렸다.

땅에 납작 엎드린 잔디 위로 꽃대가 한 뺌 이상 자랐다. 바라보는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요즈음은 이 꽃이 귀하다보니 보는 이마다 한 마디씩 한다. 잎만이 널브려져 있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꽃대가 올라오자 다가서서 관심을 보인다. 기왕에 할미꽃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반가워하고, 모르던 사람들은 무슨 꽃이냐면 호들갑이다. 아무리 호들갑을 떨어도 잎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 꽃대와 꽃에 대해서 거든다. 꽃대가 굽어 애처롭게 보이고, 색깔이 진자주색이라서 진기해 보인다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더러는 온 몸에 난 털의 부드러움을 이야기하며 신기해하기도 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관심주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서 꽃씨가 익어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기 시작하면 소중히 그 씨앗을 받았다. 실하게 익도록 그늘에 며칠 두었다가 파종을 했다. 체에 치어 곱게 부스러진 흙을 작은 비닐 화분에 담고, 손가락으로 꾹 눌러 조그마하게 흠을 낸 다음, 그곳에 씨앗을 서너 개씩 넣고 흙으로 덮었다. 한 보름 정성들여 물을 주니 새싹이 돋아난다. 한 해 여름 정성들여 관리하자 실한 할미꽃으로 성장했다. 잔디가 누렇게 변하는 가을날에 정식(定식)해 놓았더니, 다음해 봄에는 꽃대를 밀어 올리는 것이 아닌가.

번식시켜 마당가 잔디밭의 구석구석 사람의 발이 닿지 않는 곳이면 모두 할미꽃을 심었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그 꽃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나대지도 않고,후미진 곳에서 제 자리만을 지키고 있는 할미꽃. 수줍어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마냥 애처롭기만 하다. 차마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고, 속으로 삭이며 살다가 스르르 말라버리는 가슴처럼 삶을 살아내는 할미꽃. 내 곁에 올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그 진자주색을 유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옮겨와 그 긴 세월을 살았으면 고개 들어 하늘이라도 한번 바라볼 수 있을 텐데. 전혀 그런 건방은 없다. 언제나 타향에 와서 주위 꽃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제 자신만을 다스리며 살고 있다. 가끔은 잡풀이 날아와 옆구리를 찔려도 항변 한마디 없이 제 분수만을 지키며 삶을 살아낸다.

어쩐 일일까. 그 동안 꽃만이 눈에 들었지, 씨앗이 자라 백발옹(白髮翁)이 되는 것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니..... 이런 무관심이 있을 수 있을까. 머리털이 허옇게 변하도록 나이가 들고 보니, 이제야 그 백두옹(白頭翁)이 내 가슴에 한스럽게 파고든다. 흰 머리털 흩날리며 바람에 그리움을 실어내는 그 애절한 망향의 뜻을 왜 몰랐을까.

이젠 수백 개의 비닐 화분에 파종하여 할미꽃을 번식한다. 돌보는 재미도 있다. 물론 그 마음에는 숨겨둔 기대감도 있다. 운이 좋으면 조상들이 살던 고향땅으로 옮겨갈 기회를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처름 타향에 와서 살고 있는 할미꽃. 망향의 꿈이 나만큼은 크겠지. 어쩌다 고향 말씨를 쓰는 사람이 나타나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다. 속마음은 그가 이 꽃에 대해 욕심이 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달라고만 하면 몇 포기쯤이야 선뜻 내어줄 판이다. 이 꽃이 조상의 삶터로 돌아갈 좋은 기회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아침저녁으로 경대 앞에서 빗질하며 흰 머리털을 줍기 시작한 후로는 더욱 고향이 그립다. 꽃만 보았지 백발옹을 보지 못하던 시절과는 달리 요즈음은 자꾸만 `고향`이란 말이 고개를 든다. 지난번에 받아 놓은 백두옹의 씨를 꺼내 본다. 많은 씨앗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한담을 즐기고 있다. 흡사 동네 사랑방에 모여 앉은 노인들처럼.

이번 제사때에 할미꽃 씨를 가지고 부모님이 계신 선영에도 다녀와야겠다.

 약력
호서문학상 수상
신곡문학상 대상 수상
새 한국문학상 본상 수상
문학시대 문학대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저작권옹호위원회 위원
<현대수필>이사
<수필과 비평>, <문학세계>,<수필시대>,문학미디어> 편집위원
수필집 <러브레트와 로비레트>,<놓아주기 연습>,<감주와 설탕물>,<흔들리는 계절>외
평론집 <본질 찾기와 수필 쓰기>
현 거제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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