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원대 피해 입히고 도주했는데... 종합보험 들었으니 그만 '악법'중의 '악법'
음주 후 물피 사고만 내고 도주했다 며칠뒤 잡혀도 아무 문제 없다는 말..있을 수 없어
'관련법(法)' 만들지 않으면 악용(惡用) 할 여지 많아...
대법원판례 '2차사고 우려' 경우에만 뺑소니 적용...경찰 "차라리 재물손괴죄에 해당"
주차장에서 주차를 하다 주차차량과 충돌해 피해를 입혔다면 어떻해야 할까? 정답은 일단 '도망' 가면 된다. 이유는 잡히면 보험처리하면 그 뿐이고, 안잡히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며칠전 박모(36.고현동)씨는 거제에 있는 모 조선소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하려고 승용차를 세워 둔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주차장에 도착한 박씨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3개월 전에 구입한 자신의 스파크 승용차 앞뒤 범버와 문짝 및 차량 옆 부분이 크게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다.

▲ 사고 차량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박씨는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는 등 범인을 잡으려고 했으나 막막하기만 했다. 아무런 단서도 없었기에 엄청난 물피를 입히고 도주한 차량과 운전자를 붙잡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히 이곳 주차장 주변에 CC카메라가 설치 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범인은 이틀만에 붙잡혔다.

자신의 승용차는 수리비만 1백21만5천원이 나올 정도로 형편없이 부서졌지만 큰 물피를 내고 도주한 범인을 붙잡았으니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해결 될 줄로만 알았다. 특히 차를 구입한지 불과 3개월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신차파손에 대한 보상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도주한 운전자는 뺑소니범으로 경찰로부터 형사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경찰로부터 전해들은 얘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아무리 많은 피해를 입었다 해도 현행 관련법상 "물피에 대한 처벌은 '뺑소니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스티커 한장도 발부되지 않는다. 종합보험에 가입 돼 있으면 그 자체가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이로인해 주차중인 차량에 대한 물피 도주 사고는 피해금액에 상관없이 사법처리가 사실상 불가능 하다는 얘기다. 때문에 보험회사에서 차량 파손을 고쳐주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보험회사에 따르면 "모든 보험회사가 신차의 경우 차량 금액의 20%이상 파손됐을 시에만 수리비의 30%를 신차보상비로 주기는 하지만 이 경우 차량 금액의 20%가 안되기 때문에 아무런 보상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화가 치민 박씨는 경찰에 따졌지만 담당경찰은 "우리도 어쩔 수 없다"라는 대답만 반복 할 뿐 이었다. 박씨는 새차를 물피도주 차량때문에 앞 범퍼를 교체하고 앞 휀더와 문쪽을 도색하는 피해를 입고도 아무런 하소연 할 곳이 없었다. 만약 박씨가 개인 사정상 차를 팔게 된다면 사고난 스파크 차량은 정상 중고차 가격을 받지 못하는 재산상의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거제경찰서 뿐만 아니라 다른지역 경찰서에도 확인결과 답변은 거의 같았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 54조 1항의 규정에는 "차의 운전 등 교통으로 인해 사람을 사상하거나 물건을 손괴한 때에는 그 차의 운전자나 그 밖의 승무원은 즉시 정차해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하고 조치를 아니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 돼 있다.

이같은 법 규정에 따라 박씨는 붙잡힌 가해자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했으니 당연히 '물피 뺑소니'나 '사고후 미조치'에 따르는 처벌을 받을 것으로 생각 했다.

하지만 거제경찰서 관계자는 "처벌을 하기위해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해도 관련법 적용이 어려워서인지 문제를 삼지않는다"며 "이 때문에 경찰에서도 차량 물피사고건에 대해서는 도주를 하더라도 뺑소니로 처벌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경찰의 주장대로라면 로교통법 54조 1항의 규정과 주차차량 물피 도주관련 법 적용이 다르다고 볼 수 밖에없다.

주차차량 물피 도주와 관련해 적용할 수 있는 법 규정이 뚜렷하지 않다는게 이유다.

이같은 경찰의 관렵법 규정에 대한 소문이 퍼지자 "이해할 수 없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비슷한 경우를 당했지만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A모(54.고현동)씨는 "법 규정이 없으면 반드시 관련 규정을 만들어야지 이대로 둔다면 앞으로 어떤 억울한 일이 또 일어날지 모른다"고 울분을 토했다.

A씨는 또 "세계 2,3위 조선소와 관련 협력업체가 있어 하루 수천대의 차량들을 주차시켜 놓는 산업현장에서 법을 악용한 도주행위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될수도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특히, 경찰이 말하는 현행법 규정대로라면 고의이건 실수이건 주차중인 차량을 들이받아 상대차량이 폐차 직전에 가더라도 인피만 없으면 일단 도망부터 가는것이 상책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 하겠지만 현실은 일반 사회 통념상의 생각과는 너무나 동떨어있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운행중이 아닌 주차장에서 생긴 아무리 큰 사고라도 인피만 없으면 무조건 도망부터 갔다가 "잡히면 보험처리로 끝낼 수 있고 안잡히면 다행"이란 생각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거제지역 산업현장에 하루 주차해 놓는 차량 수가 수천대에 달하는데 이런 곳에서는 얼마든지 이같은 유형의 사례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안고있다.

여기에다 현재 거제지역 차량 등록대수는 9만4천9대(4월말 기준)로 도심지 주차장의 경우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포화 상태에 있는데다 불법 주차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있는 상황이어서 물피 사고를 내고 도주 할 개연성이 늘 열려있는 곳이다.

이런 상황에서 퇴근 후 잦은 회식과 술자리가 많은 조선근로자들과 시민들이 음주상태에서 차를 몰고가다 주차 차량을 들이받고 도주 할 우려가 많은 곳이어서 더욱 문제다.

한편, 대법원 판례에는 "도로교통법 제 54조 1항의 규정에 따른 운전자가 취해야 할 조치는 사고의 내용과 피해의 정도 등 구체적 상황에 따라 적절히 강구돼야 하고, 그 정도는 건전한 양식에 비춰 통상 요구되는 정도의 조치를 말한다"고 판시해 놓고 있지만 사실상 도로상에서 2차사고 우려가 있을 시에만 이같은 법을 적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입장에서도 물피 뺑소니의 경우 당연히 국민의 재산상 피해에 대한 사건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을 들여 수사해 힘들게 범인을 잡아도 아무런 처벌도 할 수 없어 허무하다"며 "물피 뺑소니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피해 시민들이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항의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을 때는 정말 속상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같은 불합리한 법 때문에 오랜시간 상부에 정책제안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며 "사고신고불이행이나 재물손괴죄를 적용할 수 있는 관련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