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자리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이웃이 서로 얼굴이나 알고 지내자며 근처에 사는 몇 쌍의 부부가 만남을 가졌다. 남편의 불규칙한 퇴근시간 때문에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먼저 온 이웃들은 예약된 음식과 술을 먹고 있었다.
벌써 서로 인사를 나누고 많이 가까워진 듯 보였다. 우리가 도착하자 통성명을 하고 악수를 나누고 의례적인 말로 분위기가 수선스럽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이런 불편한 자리는 내게 안 맞다. 친해지려고 억지로 자리 만들어 인사 나누고 격식 차리는 일은 웬만하면 피하면서 산다.
무엇보다도 처음 보는 사람하고는 말을 잘 못한다. 그나마 상대가 뭘 물어도 단답식이니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는다. 나도 답답하지만 상대방은 오죽 답답할까. 그나마 남편이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내 몫까지 해줘서 조금 편해졌다.
“한 잔 하세요.”
저 쪽에서 마주 앉은 여자가 술을 권한다. 처음에 받은 잔도 그대로 내 앞에 얌전히 놓여 있다. 술을 못 한다고 사양하는데도 술병과 잔을 들고 자꾸만 내 앞으로 팔을 뻗는다. 할 수 없이 잔을 받지만 난감하다. 못 마시는 게 아니라 건강이 좋지 않아 안 마시는 거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유를 길게 설명하는 게 싫어서 술잔만 차곡차곡 앞에 쌓인다.
술을 전혀 못하냐고 옆에 앉은 안면이 있는 젊은 여자가 물어본다. 그녀의 얼굴과 행동엔 벌써 취기가 올라 보인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갤 끄덕였더니 내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요즘 세상에 술 못하는 여자가 어디 있어요? 못 먹는 자기만 바보지.”
큰 소리로 비아냥거린다. 듣고 있던 남편이 나쁜 병이 들어 수술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치료중이라고 해명하고는 넘어갔다. “그래도 커피는 잘 드시던데요. 그것도 몸에는 해로운데 아침에 보면 꼭 커피를 마시는 것 같더니.”
참 피곤한 여자다. 자꾸 딴죽을 건다. 그 정도하고 넘어가면 좋으련만 술 잘 마시는 게 뭔 자랑이라고. 아무래도 전주 몇 잔에 취한 것 같다. 불편하다. 쓸데없는 시간낭비다. 억지로 이런 자리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을 텐데 성급하게 만남을 주선하는 이웃들이 싫어진다.
이삼 년 전 위암 수술을 받았다. 아직 술을 먹으면 안 된다는 주치의의 진단에 따라 마시길 좋아하는 술과 음료는 당분간 멀리하고 있다. 대신 오래 전부터 하루에 몇 잔씩 마시는 커피는 아침 식후에 한잔 정도 꼭 마신다.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는 집이라 시간이 있는 날이면 마당에서 여유를 부리곤 하다가 그녀와 몇 번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 그때 커피향이 그 집까지 건너간 모양이다.
성냥갑처럼 규격화되고 옆집에서 큰소리만 쳐도 벽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가 마치 폭포수 쏟아지는 듯하던 아파트생활에서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하니 참 좋다. 바로 집 뒤통수에는 잘 자란 짙은 수목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고, 앞 쪽으로는 툭 튀인 시가지가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이라 참 마음에 들었다. 산중에 위치한 집이라 조용하고 공기도 좋지만 숨 막히는 아파트가 아니라서 더 좋다. 시내와 멀리 떨어지지도 않고 교통도 편리하다.
오래 전부터 꿈꿔왔던 내 집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꿈을 이뤄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행복한 노후생활도 설계했는데 이웃이 마음에 안 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웃 여자가 불편하다. 상대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 내면에 무슨 깊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권하는 한 잔 술로 자기 기준에서 함부로 대하는 행동이 마치 씹어서는 안 될 음식을 삼킨 것 마냥 역겹다. 삶의 한 단면들이 전부 꼭 같거나 방식들이 하나같을 수 없는데,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지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작고 병약하게 보이는 내 체구가 그녀에게는 너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우습게 보인 것은 아닐까. 괜스레 남편에게 짜증을 내 보기도 하지만 무심한 남편은 술기운에 녹초가 됐다. 창밖을 내다본다. 하늘에 총총한 별들이 쏟아지듯 맑게 열을 지어 있지만 나의 생각은 정돈되지 않고 휑하니 찬바람만 분다.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시 이사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난감하다. 오늘이 지나면 다시 괜찮아지겠지 하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좋은 마음을 가지려 애쓴다. 하지만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것은 부담스럽다. 억지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도 싫다. 그녀의 비아냥거림이 요즘처럼 오랜 장마에 뒤뜰에 떨어진 축축한 낙엽처럼 내 마음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