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해보다 긴 추석 연휴지만 전두환·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음은 그리 가볍지 못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44)씨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홍일(57)씨,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위 윤상현(42)씨가 2004년 총선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아버지(혹은 장인)가 전직 대통령이라는 점이 때로는 커다란 후광으로, 때로는 넘어야 할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들은 자식에 대한 애틋한 '부성애'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드러내놓고 지원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특히 자식의 총선 출마에 대한 전직 대통령들의 생각도 각양각색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열성파인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관망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의식적으로 도와주지 않고 있는 자중파다.

김영삼, 잦은 고향행…지인들 접촉해 아들 지지 호소

 김현철(44)씨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에 미래발전연구소를 만들고 17대 총선을 위해 뛰고 있다. 현철씨는 지역에서 연구소 회원들과 함께 해수욕장과 큰 하천 등을 찾아가 청소를 하는 등 환경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 불우시설을 방문, 봉사활동을 하는 등 밑바닥 표밭 갈기에 한창이다.

김씨는 "내년 총선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출마할 것"이라고 공식 표명하고, "현 거제 지역구 의원인 김기춘(한나라당) 의원도 4월 상도동을 방문, 아버님(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지역구에 출마 안하고 전국구로 가겠다는 말을 했으며 내게도 그런 뜻을 전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기춘 의원은 "지역구를 포기하고 비례대표를 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으며 그쪽의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일축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공천을 하는 사람이냐? 공천은 거제시민과 당원들이 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현철씨측은 "경남지역의 정서상 한나라당 공천이 유리하긴 하지만 굳이 한나라당 공천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내 소장파들은 "한나라당이 국민들에게 과거 지향적으로 투영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현철씨 공천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당 지도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철씨는 지난해 8·8 재보선 때 마산 합포에서 한나라당 공천으로 출마를 추진했으나 당 내 반발에 부딪혔다. 이후 현철씨는 무소속 출마 강행 의욕까지 보였지만 이 역시 명분을 중시 여기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시기적으로 좋지 않다"고 만류, 뜻을 접어야 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현철씨의 내년 총선 출마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두 전직 대통령에 비해 상당히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현철씨를 지원하고 나섰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달 11일 휴가를 명분으로 거제를 방문, 상당수의 지역유지들을 만나 현철씨에 대한 지지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만 벌써 두 번째 방문이다.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재임시절 일년에 한 번 거제를 찾았던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특히 지난 5월 5일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방문한 적이 없던 거제 시청을 방문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거제에 주재하고 있는 한 지역기자는 "여기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한 번 지나가기만 해도 낚시터에 밑밥을 뿌린 것처럼 표가 응집하는 효과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현철씨도 나름대로 지역발전보고서를 내는 등 민심잡기에 주력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김 전 대통령의 후광을 크게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이번 추석 명절에 거제에 내려가지 못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문제 때문에 너무 잦은 고향행은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김대중, 내심 '출마하지 않았으면'…관망 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들에 대한 사랑 방법도 판이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장남 김홍일 의원이 17대 총선에서 다시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를 말리지도, 그렇다고 돕지도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다.

호남은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심판대가 될 전망이다. 민주당 후보 경선 때 노풍의 진원지였던 광주가 여전히 노 대통령에게 관심을 보여주느냐, 냉대하느냐가 이번 총선에서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비록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퇴임했지만 여전히 호남에서 김 전 대통령의 심중은 곧 표심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총선에서도 아버지의 후광으로 당선된 김 의원으로서는 이번에 다시 아버지의 힘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김홍일 의원의 총선 출마는 정계에서 은퇴한 김 전 대통령에게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 된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은 "김 전 대통령이 현재 호남 민심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김홍일 의원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호남민심은 김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성공한 대통령으로 추앙받지 못하자 김홍일 의원을 비롯해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한화갑 민주당 의원 등을 원망하고 있다.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론이다. 김홍일 의원에 대해 여러 차례 의원직 사퇴설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아들 3형제가 모두 법정에 서는 비운을 맞았다는 점에서 김 전 대통령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크게 질책하고 있다. 김 의원은 나라종금 로비 의혹사건과 관련, 안상태 전 나라종금 사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알선수재)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게다가 김 의원은 파킨슨 병, 당뇨, 고혈압, 언어장애 등의 지병을 앓고 있다.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김 의원의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출마를 만류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김 의원 역시 총선 출마로 실추된 명예를 되찾겠다고 벼르고 있다.

'백년손님' 윤상현 교수의 홀로서기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이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불법적으로 조성한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에 대한 추징금 문제로 심각한 비난 여론에 휩싸여 있다. 전 전 대통령은 사위 윤상현 한양대 겸임교수의 총선 출마를 지켜보면서 도와주고 싶어도 오히려 해가 될까봐 도와주지 못하고, 자중하고 있다.

윤 교수는 최근 안영근 의원이 탈당해 사고지구당이 된 인천 남구을 조직책 공모에 도전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조직책에 선정됐다. 내년 총선에서는 역시 조직책이 된 조재동 전 인천시의원, 홍일표 변호사 등과 경쟁하게 된다.

윤 교수는 지난 해 8·8 재보선 당시 경기 하남에 공천을 냈지만 탈락한 바 있다. 특히 윤 교수가 공천심사에서 1위를 했는데도 마지막에 공천에서 제외된 이유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위라는 점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에서 반응은 좋았지만, 장인의 이미지 때문에 구시대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윤 교수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지난 대선때 한나라당이 노무현 후보의 장인의 남로당 부역 경력을 공격하자 노 후보는 '아내를 버릴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느냐"며 담담해 했다. 윤 교수는 이어 "선거전에 돌입하면 이슈가 한 가지로 국한되지 않고, 개인 후보의 능력이자 자질을 가지고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윤 교수는 특히 "그 분(전두환 전 대통령)의 후광을 가지고 정치하려고 했다면 벌써 대구로 내려가 단번에 당선 됐을 것"이라며 "그러나 내가 계속 수도권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홀로서기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또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위도 자식인데 도와주고 싶어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사위는 '백년 손님'이라는 말이 있다"며 "그런 말씀을 하신 적도 없고, 또 도와주지 않기를 바란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당의 한 관계자도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는 자기 지역구를 자식에서 물려주는 것이지만 윤상현 교수의 경우는 피해자"라며 "장인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 힘으로 새로운 땅을 개척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내년 총선에서 윤 교수가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시 장인의 그늘에 발목을 잡히게 될지 주목된다.

오마이뉴스 최경준 기자 (235jun@ohm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