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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박찬정] 손을 잡아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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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5  09: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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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을 잡아 주마

                                                                                                                           박 찬 정

   
 
삼 년 전 한창 집을 짓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집터의 한갓진 곳을 골라 흙을 파고 돌을 골라내어 꽃씨를 뿌렸다.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지는 잡초를 제압하려면 무엇이든 심는 수밖에 없었다. 해외여행 중 소량 포장된 씨앗들을 사온 적이 있다. 귀에 익은 꽃 이름이 아니긴 해도 겉봉의 꽃 사진을 보니 알 것도 같았다. 제 삶터를 떠나 이국 멀리 온 씨앗은 낯가림도 없이 그 해부터 줄기가 튼실하여 꽃을 흐드러지게 피웠다. 자재가 이리 저리 쌓여있는 건축 공사장이지만 환하게 핀 꽃을 보면 마음이 사뭇 즐거웠다. 그 다음해에는 따로 씨를 뿌리지 않았어도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무성하게 자랐다. 다복솔처럼 소복하게 싹이 난 것을 몇 차례나 뽑아내어도 지난해에 떨어져 땅속에 묻혔던 씨앗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리를 차지하려 들었다. 나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가꾸시던 소박한 꽃밭을 꿈꾸고 있다. 내 머릿속의 우리 집에는 아기자기하게 과꽃이 피고, 백일홍과 맨드라미가 가득한 꽃밭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해가 거듭되어도 싹조차 틔워 보지 못했다.

예전에 본 어머니의 꽃밭은 수월하게 꽃이 피었었다. 언 땅이 풀리면 꽃씨를 뿌리셨고, 봄비가 한 차례 지나가고 나면 봉긋하게 싹이 올라왔다. 솎아 내어 옮겨 심어도 제각각 시절에 맞추어 꽃을 피웠다. 그럴듯한 정원도 아니다. 봄이면 마당 한쪽에 돌을 나란히 괴어 꽃밭을 일구지만 겨울이면 우리 형제들이 복닥거리고 노는 마당이었다. 칸나와 다알리아는 맨 뒤쪽에 심었고, 맨드라미 봉숭아 백일홍 그리고 과꽃은 그 앞에, 채송화와 한련은 맨 앞에서 돌에 턱을 괴고 피었다. 비 오는 날 이웃에서 색다른 꽃모종을 얻어와 심기도 하셨지만 어머니의 소박한 꽃밭은 어느 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사할 때 꽃밭까지 들고 다니시는 것 같았다. 칸나와 다알리아는 알뿌리를 캐고 일년생 꽃은 씨를 받아 두었다가 언제나 키를 맞추어 같은 순서대로 심으셨다. 꽃밭을 머리에 이고 와 살짝 내려놓으신 것처럼.

사월에 첫아기를 낳아 세이레동안 친정에서 어머니의 산 구완을 받았다. 산바라지를 하시면서도 어머니는 꽃씨를 뿌리셨다. 산후조리를 마치고 내 집으로 돌아오던 오월 초순에는 영산홍이 환하게 피었었다. 넝쿨장미가 만발하여 혼자 보기 아깝다느니, 봉숭아가 색색으로 피기 시작한다느니 어머니는 수시로 꽃 소식을 전하셨다. 산 구완하며 안고 어르던 외손자가 아른아른 눈에 밟혀 꽃을 보러 오라는 말로 둘러대곤 하셨다. 유월의 햇살이 눈부시던 날 꽃밭에서 갓난쟁이 손자를 안고 찍은 사진 속에는 한련화가 화사하게 피어 있다. 어머니는 외손자가 크는 것을 내내 지켜보지 못하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가셨다. 봄꽃 만발한 꽃밭을 머리에 이고.

나는 올해도 갖가지 꽃씨를 뿌리고 기다렸지만 지난해 떨어진 씨앗의 새싹들이 꽃밭을 점령해 버렸다. 망연해 있는데 그 즈음 아는 이에게서 떡잎 두 장이 난 작두콩 모종을 얻었다. 배양토가 든 종이컵에 심어져 있었다.

“아! 이런 방법이 있었네.”
나는 곧바로 배양토와 모판을 구입하여 한련의 씨를 심었다. 연약한 실뿌리를 흔들지 않기 위해 물을 분무기로 안개비처럼 주었다. 한련은 싹을 틔우고 꽃밭에 옮겨 심으니 꽃을 피웠다. 배양토 모판은 한련를 이끌어 준 힘이다. 옮겨 심어 몸살을 하는 식물도 있지만 땅에 바로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조건에서는 모판에 심어 모종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씨앗뿐만이 아니다, 나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내 나라를 떠나 외국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는 모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우왕좌왕했다. 기존의 다수 힘에 밀려 어처구니없이 양보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때 나의 손을 잡아 준 이웃이 있어 낯선 이들과 공존하는 힘을 얻었다. 귀국한 후에도 오랫동안 떠나 있은 탓인지 매사에 서름서름했다. 공연히 텃세를 부리며 달가워하지 않는 마을사람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끌어 주고 터전이 되어 준 고마운 이들이 있어 자리 잡고 살아간다. 세상이 각박해져 간다지만 그래도 뿌리치는 손보다 잡아서 이끌어 주는 손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밀은 손을 잡고 작은 씨앗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내년에는 배양토가 든 모판에 꽃씨를 뿌려야겠다.

■ 약력 ■

*서울 출생

*거제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수료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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