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멧돼지 와의 전쟁' 앞으로가 더 걱정
농사도 묘지도 산행도 안심하고 못할 판
"으악! 사람살려..."

18일 오전 회사 전 직장동료 2명과 함께 거제시 동부면 포록산(250m) 정상을 통해 가배KT수련원 까지 횡단 산행을 하던 정 모(54.거제시 고현동 덕산아내아파트)씨는 "사람살려..."라며 고함을 지르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자신이 선두에 서서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여 가량 지나 갈 무렵  뒤 따르던 50대 동료 김 모(50.거제시 거제면)씨는 40여m 가량 뒤쳐저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산 정상 부근에 도착 할 즈음 갑자기 뒤에서 난데없이 "사람살려" 라는 큰 고함 소리가 온 산을 올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순간 "무슨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고함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마구 달려갔다.

그 곳에는 김 씨가 고목처럼 뻣뻣하게 서 있었으며, 주변에는 큰 도사견 만한 새까만 털색의 이상한 짐승 한 마리가 김 씨를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멧돼지는 아니란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지만 처음보는 짐승이라 이대로 있으면 큰일 나겠구나 싶어 기지를 발휘했다.

짧았지만 자세히 쳐다보니 사나운 사냥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를 많이 키워본 경험이 있는 터라 김 씨를 향해 "멧돼지는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말고 일단 움직이지 마라" 라며 안심시킨 후 검은 짐승을 향해 눈길을 쏘아 붙쳤다.

▲ 자료사진

이 짐승이 사라진 후 겁에 질려 숨 고르기를 하고 있던 두 사람과, 나머지 1명 등 일행 3명은 개로 보이는 짐승이 사라진 방향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런데 방금 보았던 시꺼먼 사냥개와 함께 총을 든 엽사 2명이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곁에는 또다른 소형 사냥개 2마리도 따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는 순간 멧돼지 사냥꾼이란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화가난 정 씨 일행은 다가가서 "사람들이 다니는 등산로에 이런 무서운 사냥개를 데리고 다니면서 사냥을 해도 되느냐"고 따지자 엽사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지금 거제는 멧돼지로 인해 곳곳의 전답과 산속의 묘지 피해는 물론, 이제 등산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해 가고 있다.

반복되는 전답과 묘지 피해는 이미 너무 많은 사례가 발생하고 접수 돼 그다지 놀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멧돼지 출몰 위험으로 인해 등산 까지 할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애호가들이 대책을 호소 할 정도가 됐다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18일 정 씨 일행이 거제 동부면 포록산에서 사냥개에게 당한 위험한 상황도 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멧돼지로 인한 것이나 다름 없다.

멧돼지로 인한 피해는 농사 피해에서 지금은 사람들이 직접 피해를 입을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이 가운데 정 씨 일행이 실제로 당했던 사냥개에 의한 피해는 앞으로 더 걱정이다.

유해조수를 박멸하기 이해서는 사냥개를 이용해 등산로 뿐만 아니라 민가 인근에 까지 내려와 사냥을 할 수 밖에 없어 또다른 문제가 발생 할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지난달 중순에는 거제와 가까운 통영시 한산면 용초도에서 엽사들이 데리고 온 사냥개가 마을주민이 사육하는 어미 염소 5마리를 물어 죽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엽사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유해조수 박멸을 위해 사냥에 나설 경우 일정액을 납입하는 보험에 가입할 수 있어 가축에게 피해를 입히더라도 보험처리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거제에서도 이같은 유사 사례는 더러 있었다.

이제 농민들은 멧돼지 출몰이 우려되는 산과 가까운 곳에 있는 전답은 아예 농사를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는 추세다. 심지어 민가 인근의 밭 등에도 피해 방지를 위해 주변에 그물망과 피해방지를 위한 각종 시설물을 설치하는 등 비용 부담이 많아 차라리 농산물을 사 먹는 것이 속 편한 실정이다.

산 속에 있는 묘지의 경우도, 파헤쳐진 봉분을 정성을 다해 복구해 놓고 돌아서면 또 파 헤치고 있어 관리에 비상이 걸린지 오래다.

거제시 둔덕면 문 모(60)씨는 "지난해 멧돼지가 선산의 묘지 3곳을 크게 훼손해 수 십 만원을 들여 복구 했다"며 "추석에 성묘차 산소에 들렸는데 또 이전처럼 파헤쳐 놓았다"고 하소연 했다.

더 큰 걱정 거리는 멧돼지 와의 전쟁이 사냥개와 엽사들에 의해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산림은 더 우거지고 덩달아 멧돼지 숫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유해조수 박멸을 위해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엽사들은 "그렇게 멧돼지를 잡아내도 끝이 없을 정도로 그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함께 멧돼지 피해 방지를 위해 출동하는 엽사들은 엽사대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등산로나 민가 인근에서의 사냥은 잘 못 된게 맞지만 늘 위험이 존재한다고 한다.

특히 자신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사냥개의 경우 대형 멧돼지 사냥시 여러 마리를 풀어야 겨우 포획 승산이 있다. 그렇지만 자칫 하다가는 엽사도, 사냥개도 큰 피해를 입을 우려가 항시 존재한다.

실제 12월 초 하청면 칠천도에서 유해조수 출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김 모(54.고현동)씨는 "마을주민들이 멧돼지 때문에 농사를 망치는 것은 물론, 겁이나서 못살겠다는 신고를 받고 포획에 나섰다가 사냥개 4마리가 즉사한 일이 벌어져 겁이 덜컹 났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씨는 "이정도면 아마도 250kg 이상 되는 대형 멧돼지가 지금 칠천도 곳곳에서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을 것이 분명해 농사 피해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의 생명에 까지 위험 할 수 있어 꼭 포획해야 될 것이다"고 말했다.

등산을 하다 사냥개로 인해 크게 놀랬던 정 모씨는 "그래도 등산로나 주민들이 피해를 입을 만한 곳에서의 수렵행위는 절대 근절돼야 할 것이다"며 "관계당국의 대책마련이 뒤따라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