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31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1200여명의 사상자를 낸 알아이마 다리 대참사의 원인은 순식간에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어버린 군중 행동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수십만 시아파 순례객들이 티그리스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는 가운데 "자폭 테러범이 있다”는 누군가의 외침에 지레 겁을 먹고 서로 도망가려다 깔려서 죽고 강에 떨어져 죽었다.  

앞선 1903년 12월 30일 저녁 미국 시카고 이로쿼이 극장에서도 같은 상황이 발생했었다.  무대 뒤편에서 갑자기 발생한 화재에 공포를 느낀 관객들이 출구를 향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8분만에 진압된 작은 화재였지만 무려 588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의 대부분은 연기에 질식되거나 불에 타죽은 것이 아니라 좁은 통로로 밀려드는 사람들에 의해 압사 당하거나 질식사한 것이다.  

사방이 막히고 캄캄한 공간에서 발생한 돌발적 위험상황은 사람들에게 극도의 두려움과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미국의 사회학자 블루머는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무질서하게 휩쓸리는 군중을 가리켜 '도피적 폭중(暴衆·Escape Mob)'이라 정의했다.  

도피적 폭중은 이성이나 논리적 사고를 순식간에 상실한 상태에서 위험에 빠진 동물과 마찬가지의 본능적 행동 특성을 보인다. 즉 깜깜한 어둠 속에서 "불이야'란 소리를 듣고 동요한 폭중들은 어디에 출구가 있는지, 화재가 어떤 상태인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우선 빠져나가고 봐야 한다는 절박함에 방향을 잃고 무조건 옆사람을 따라 우왕좌왕 밀치고 뛸 따름이다.  

도피적 폭중과 같은 비합리적 군중 행동들은 물리적 위험상황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기업경영, 주식투자나 부동산 활동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멀쩡하던 기업이 근거없는 또는 악의적으로 누군가가 퍼뜨린 증권가 루머에 편승한 '팔자'바람과 금융권의 대출금 회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않고 마는 경우가 해당된다.  

우리 거제지역에도 이와 비슷한 모양의 비합리적 군중행동들이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투자열풍과 주택신축 붐이다. 전국적인 건설경기 불황에 비해 거제에는 짓기만하면 분양걱정은 할 필요없다는 소문에 주택건설업체들이 대거 몰려들고 있다. 한뼘의 자투리공간이라도 있으면 주거환경과는 상관없이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소비자들은 어떤가. 조선경기가 앞으로 10년 호황, 다시 10년 정도 진정국면을 유지할 것이란 전문가들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넘치는 주택공급 물량에 지레 주눅이 들어 지금 집을 사야할지 팔아야할지 전전긍긍하고 있으며 매물 또한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어디에 비해 어느 지역이 새로 뜰 것이란 소문에 도로나 학교 등 편의시설, 출퇴근 환경 등은 세심히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적인 탈출과 러시가 일어나기도 한다.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가 1, 2대 주주로 있는 지역 최대기업이자 국가경제의 버팀목인 대우조선해양(주) 매각과 관련한 지역의 요구와 대책도 대체로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노동조합, 시장과 시의회 의장, 지역국회의원, 정치인들이 모두 우리사주조합이 이들 최대주주의 지분을 인수하는 것만이 바른 해법이라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아쉽게도 대기업에 적용된 전례도 없고 안과 밖으로 넘어야할 산도 험난하다.   투쟁을 위한 결속을 다지기 위한 내부적 목적이나 단순히 주장의 선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우리사주조합이 이들 지분 전량을 인수한다는 단수의 해답을 놓고 배수진을 치면 되겠지만 시장의 현실은 그리 단순한 곳이 아니다.

불리한 시장의 경제 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외길 투쟁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있는 복수의 협상 카드들을 준비하고 상황 변화에 따라 적절히 제시하고 조율하는 것이 보다 현실성이 있고 실리적이다.   기술적 상호보완과 상생을 도모할 수 있는 동종업체 H중공업과의 전략적 제휴도 장점이 될 수 있고, 과거 대우조선이 증권시장의 백기사 역할을 자임했던 D해운도 새로운 경영파트너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시너지 창출이 가능한 견실한 철강업체와의 제휴방안이나 국가기간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국민주공모방식도 검토가능할 것이다. 물론 우리사주조합이 지분인수를 통해 2대 주주의 지위로 경영에 참여하는 것도 대안의 하나이겠지만 최근 대우자판의 경우 1대 주주로부터 우리사주조합이 경영권을 넘겨받을 수 있었던 것은 2.14%의 지분을 가진 전문경영인 이동호 사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세태가 복잡하고 혼란스러울수록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개인이나 집단 모두 옆을 따라 본능에 의존한 채 무조건 뛸 일이 아니라 무게중심을 굳게 잡고 주변을 두루 살펴보는 여유가 중요하다. 우리네 생활이 아무리 빡빡하기로서니 불이난 어둠 속의 이로쿼이 극장이나 갑작스런 폭탄테러의 위협을 느낀 알아이마 다리 위의 사람들만큼 절실하고 급박하기야 하겠는가.   


< 이수호> - 이수호해양개발연구소 대표 - 부경대학교 박사과정(해양도시계획) 수료 - 이슈투데이 칼럼위원 - 문화관광부 남해안 및 서해안 관광벨트계획 자문위원 - '거제지역 해양관광벨트 설정에 관한 조사 연구(국토도시계획학회)'외 다수 논문 및 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