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답이 없어도 던져야 하는 질문들이 있다.
삶이란, 어쩌면 그 질문을 품은 채 걸어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그 질문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을 아시나요?"
기록에 의하면, 달마는 서역(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왔다. 산 넘고 물 건너, 험한 여정을 감내하며 그 먼 길을 택했다.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했을까? 정말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침묵의 힘을 전하고 싶었을까?
나는 이 질문을 처음 접했을 때, 이해보다는 막막함이 앞섰다.
왜 하필 동쪽이었을까.
왜 하필 달마였을까.
왜 그는 그토록 긴 침묵 속에, 그토록 긴 여정을 걸어야 했을까.
세월이 흐르고, 나 역시 누군가의 가장이 되고, 인생의 고갯길을 몇 번쯤 넘어 본 지금에서야 그 질문의 무게를 조금은 알 듯하다.
삶에는 설명할 수 없는 여정이 있다.
누가 등 떠민 것도 아니고, 명확한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가야만 하는 길.
달마가 걸었던 동쪽을 향한 그 길은, 외롭고 고요한 진실을 전하고자 했던 내면의 혁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화려한 논변과 결과 중심의 논리가 아닌, 비워지고, 침묵하고, 끝내 '나'를 지우는 수행의 길.
그 길 끝에서 달마는 묻는다.
"그대는 스스로를 본 적이 있는가?"
오늘날 우리에게 '동쪽'은 어디일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아침이 오면 출근하고, 해가 지면 귀가하는 삶이라는 레일 위에서, 우리의 동쪽은 또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가.
달마의 동쪽은 단순한 지리적 방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내면의 여정'이었으리라.
이제 나도 묻고 싶다.
나의 동쪽은 어디인가.
나는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가.
그리고 왜, 지금 이 순간, 이 길 위에 서 있는가.
돌아보면, 삶은 늘 누군가의 묵언수행을 통해 이어져 왔다. 부모님의 말없는 희생, 스승의 눈빛, 친구의 기다림, 사랑하는 사람의 침묵.
그것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 아직도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 삶의 본질이 아닐까.
그리하여 어느 날, 삶의 긴 동쪽 끝에 이르렀을 때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만났노라고"
지금, 늦기 전에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침묵의 질문 하나를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