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참 묘한 친구다.
기쁠 때는 그 기쁨을 더욱 부풀게 하고, 슬플 때는 그 슬픔의 깊이를 더 짙게 물들인다. 가볍게 건넨 잔 하나에 웃음이 깃들기도 하고, 그 잔이 지나치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후회의 흔적이 남기도 한다.
"술은 입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마시는 것"이라는 옛말처럼, 술은 단지 알코올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기억과 감정 사이의 온도를 조율하는 기묘한 매개체다.
장자(莊子)는 '외물편(外物篇)'에서 말한다.
"큰 즐거움은 물을 마셔도 배부르고, 큰 슬픔은 술을 마셔도 해갈되지 않는다."
진정한 감정은 물질로 채워지지 않으며, 술조차도 감당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술은 때로 방패처럼 나를 숨겨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칼처럼 나를 벤다. 그 잔이 가져오는 해방감은 달콤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후회는 종종 쓰다.
나는 술 앞에서 자주 '유혹'과 '절제' 사이를 오갔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홀로 마신 술이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했고, 사람들과 부딪친 잔 속에서 묵은 감정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되새긴 말이 있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절제란, 쾌락을 끊는 것이 아니라 쾌락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배웠다.
술은 멀리해야 할 적이 아니라, 잘 다뤄야 할 친구라는 것을.
'기억을 지우기 위한 술'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기 위한 술'을 마셔야 한다는 것을.
언젠가, 한 친구와 깊은 밤 술잔을 기울이며 나눈 대화가 지금도 기억난다.
"인생이란 건 결국, 누구와 마주 앉아 어떤 잔을 기울이느냐로 달라지는 것 같아."
그 말이 참 좋았다.
어떤 잔은 나를 낮추고, 어떤 잔은 나를 높이며, 어떤 잔은 나를 울리고, 어떤 잔은 오래도록 나를 웃게 한다.
결국 술잔에는 알코올만 담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온도, 그날의 시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도 담기는 것이다.
술은 유혹이다.
그러나 더 큰 유혹은 그 술을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서로의 진심이다.
술은 절제다.
그러나 더 깊은 절제는 내 마음이 흐트러질 때 그 잔을 멈추고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용기다.
'논어'에서 공자는 말한다.
"마시되 지나치지 말라(飲酒無度)."
자기를 다스리는 자는 술도 다스릴 수 있다.
오늘 밤, 술잔을 들기 전에 나는 묻는다.
이 술은 나를 위로할 것인가,
혹은 나를 파괴할 것인가?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지금, 늦기 전에—
유혹 앞에 지혜를 놓을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