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간의 존엄성의 가치를 상실한다면, 그보다 비참한 수치는 없을 것이다.
아닌 것을 정당화하는 것을 보고, 듣고 사실화하는 것을 선거에서도 악용하는 것을 보았다. 상대편을 아닌 사실을 있는 것처럼 조작하여 사실인 양 설파하고, 일단은 이기고 보자는 심보다. 술수와 음모를 해서라도 당선되면 그만이다.
법은 만민에게 공평하다고 하지만, 재판을 하는 법관도 정치에 물들어 미적미적 지연시키고 알쏭달쏭한 해석으로 국민들을 당황하게 하는 세상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힘 있는 자는 힘없는 자를 누르고, 법을 배웠다고 법망을 요리조리 이용한다. 이것이 정당한 사회의 구성인가?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다. 남 잘되는 것은 눈뜨고 못 본다고 한다. 배가 아프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각오를 새롭게 해야지, 괜스레 '배가 왜 아프다'고 하는지는 이분법적 계산일 뿐이다.
과거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피해를 본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가진 것 없고, 힘없고, 무명인 사람들은 동네에서 항상 눈치만 보고 기가 죽어서 앞에서 말을 못했다. 감정이 쌓이면 약주 드시고 집에 와서 옴마(어머니)에게 화풀이하는 것을 어릴 적부터 보아왔다.
군자는 군자답게 동네 사람들 앞에서 의사를 당당하게 전달하고, 정당하게 주장하는 모습이 되어야 식솔들도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배우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워 가진 자들과 동등한 입장이 되기 어려운 시대였다. 당시에는 농경사회라서 아침 일찍 똥 장군 지는 것이, 일자리 창출이었다.
어느 해 추석을 이틀 남기고, 차고지 언덕 위에서 고함을 치는 소리가 들려 사무실에서 급하게 나왔다. 위를 보니 언덕 위에 살고 있는 아저씨가 개를 양손으로 들고 차고지 밑으로 던지면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키우는 개가 아저씨가 키우는 닭을 일곱 마리를 물어 죽었다"고 했다.
개는 약 3m 높이에서 직접 떨어졌다. 개를 보니까 우리 개는 아니었다. 우리 개는 대문 앞에 목줄을 하고 있었다.
여직원이 나와서 "오빠, 우리 개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여직원과 아저씨는 옆집에 살았다고 했다. 추석을 눈앞에 두고, 무슨 날벼락을 머리에 맞은 느낌이다. 살다가 살다가 처음 보는 광경이다. 명절 선물도 불길한 선물이다. 아저씨는 분이 안 풀렸는지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죽은 개는 땅에 묻어 주었다.
추석을 보내고 ㅇㅇ교회 장로님에게로, 또 ㅇㅇ면 면사무소로 편지가 왔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까, 우리 개가 아저씨 닭을 물어 죽였다는 편지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시간에 아저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저씨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곧장 갔다. 방에 가서 앉으니까 식탁 위에 도마가 놓여 있었다. 아저씨는 칼을 들고 도마를 치면서 나를 "죽이겠다"고 칼을 내 목에 갖다 댔다. 아저씨는 약주가 된 상태였다.
나는 "아버지도 고기 잡어로 배 타고 가서 배와 함께 수장되었는데 나도 죽이라"고 했다. 아저씨는 "이것 봐라"하면서 몇 번이고 칼로 도마를 치면서 목에 갖다 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집에서 나와 버렸다.
몇 개월이 지나고, 밭에서 일하고 있을 때 권경순 누야(누나)가 내 모습을 보고 와서, "지세포에 아저씨가 김 사장을 험담하는 말이 돌고 있는데 사실이냐?"하기에 나는 "아저씨가 약주를 안 드시면 좋은 사람" 이라고 했다.
누야는 "김 사장은 그렇게 말하는데, 그 사람은 사람들 있는 장소에서 된소리를 하고 다닌다" 라고 했다.
나는 "누야, 약주를 안 드시면 좋은 사람입니다" 재차 말했다. 그 후 조용해졌다. 아저씨가 옆에 살아도 목소리는 간간이 들린다. 서로 볼 일이 없다.
그 사건이 있기 전에는 서로 좋은 관계였다. 어떤 일이든 확실하게 알고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순서요 절차다. 그러나 어설프게 알고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면, 수습하지도 못하고 명분도 잃고, 실리도 회복하지 못한다.
즉, 화살은 쏘면 줍기도 하고 담기도 하지만, 말은 혀에서 뻗으면 줍지도 못하고 담지도 못한다. 세 치 혀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혀의 권세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품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입은 하나요. 귀는 두 개를 만들었다. 두 개의 귀는 많이 듣고 나서 생각하여 입으로 말하라고 했을 것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흥분하게 되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실수를 하게 된다.
성직자의 길은 고행과 수행을 하고 기도하면서, 말 한마디마다 보통 사람들의 존경하는 대상이다. 경지에 오르는 과정은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란 힘든 과정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한다. 말은 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란 힘든 과정이다. 아이가 태어나 언어 구사는 부모님으로부터 배우면서 자라난다.
말대로 하면, 이 산을 들어서 저 산으로 옮기고 싶지만, 생각뿐이다. 언어 구사를 좋게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악은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