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구금됐다가 귀국한 한국인 64명. 이 사건은 단순한 범죄가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신호탄이다. 그 이면에는 청년들의 구조적 절망, 해외 불법 취업의 그림자, 그리고 우리 사회의 정책 부재가 도사리고 있다.
범죄를 넘어선 사회적 비극
이들은 보이스피싱, 로맨스 스캠 등 국제 사기 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현지에서 구금됐다가 지난 10월 18일 송환됐다. 그러나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이들은 단순한 범죄자라기보다 '경제적 낙오자'에 가깝다.
안정된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수익 해외 아르바이트"라는 달콤한 유혹에 속아 떠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일부는 감금과 폭력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기도 했다.
변모하는 국제 범죄의 실상
앙코르와트의 나라로만 알려졌던 캄보디아는 이제 국제 범죄 조직의 아지트로 변모했다. 중국계 자본이 배후에서 움직이며 현지 토지를 매입해 범죄 단지를 운영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 사건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불안정한 국내 일자리 구조에서 벗어나려던 청년들이 오히려 범죄 조직의 덫에 걸린 현실,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또 다른 위험이다.
청년 고용의 냉엄한 현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9월 기준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7%에 육박한다. 단기 계약직과 플랫폼 노동 비중이 30%를 넘어서며 청년 10명 중 3명은 '불안정 고용' 상태에 놓여 있다.
캄보디아로 향한 64명은 바로 그 통계의 그림자에 가려진, 사회적 사각지대에 방치된 청년들이었다. 그들의 귀국은 단순한 송환이 아니라 우리 청년 일자리 정책의 실패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경고등’이다.
종합적 대응을 위한 네 가지 제안
정부는 송환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을 그 지경으로 내몬 구조적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와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할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해외 불법 취업과 범죄 유입을 차단하는 시스템을 즉각 구축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외교부, 지방자치단체, 경찰청이 협력하는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청년 일자리의 질적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 재정으로 일자리를 만드는 단기 대책에서 벗어나 산업 구조 변화에 맞는 직업 훈련과 기술 교육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
셋째, 재외국민 보호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재외공관의 영사 인력을 확충하고 긴급 송환 절차를 법제화하며 국제 공조 수사를 통해 범죄 조직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넷째, 청년층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디지털 상담 창구를 마련하고 지역 청년 센터와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국가 미래를 위한 성찰
이번 사건은 한 사회의 경제적 불균형이 얼마나 쉽게 인권 문제로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국 경제는 세계 10위권이지만 청년들에게는 ‘불안정 1위 국가’다. 청년 일자리, 사회 안전망, 교육, 외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제2, 제3의 캄보디아 사태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청년이 꿈을 잃은 사회에 미래는 없다. 이번 사건을 단순한 범죄 문제가 아닌 청년 경제와 국가의 지속 가능성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처벌만이 아닌 회복을 위한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한 청년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국가 경쟁력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