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업무를 볼 때는 130%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주인은 경영에 손해를 보지 않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만약 100%만 일한다면 주인은 큰 손해를 본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론은 당분간 현상 유지는 가능하겠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은 없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이다.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삶의 자세가 남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저 사람은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이런 의구심이 들지만, 막상 그 이유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일찍 일어나 성실하게 움직이고, 하루 종일 쉼 없이 일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잘 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긍정적인 성격이다. 잘 되어도 긍정, 잘못되어도 긍정이다. 잘못된 일을 속앓이하거나 신경을 곤두세우기보다 ‘내 탓이다. 내가 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반전시키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둘째, 일에 대한 열정이다. 일한다고 무조건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하면서 변화를 준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더 쉽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연구하는 자세가 있다.
셋째, 일에 집중한다. 문자나 전화는 무음으로 두고, 시계도 보지 않는다. 누가 말을 걸면 “예”, “아니오”로 간단히 답하고 다시 일에 몰두한다.
넷째, 일을 마친 후 감사하는 마음이다. 오늘 보람 있는 일을 했다는 흡족함, ‘유종의 미’는 여기에서 나온다. 최고는 아닐지라도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이다.
10월 어느 날, ‘원팀’(장승포농협 조합원) 모임이 있었다. 이소장님이 “봉사활동 좋아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모두가 “좋아합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럼 1박 2일로 봉사활동 한번 합시다”라고 제안했고, 일행은 박수로 화답했다.
“어디서 합니까?”라는 질문에, 나는 “제 고향 하동군 악양마을입니다. 대봉감 따는 봉사활동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언제 갈까요?”라는 질문에는 이소장이 “대봉감 수확은 11월 15일쯤입니다”라고 답했다. 모두가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토요일이었고, 그 자리에서 참석을 약속했다.
11월 15일, 우리는 승용차 두 대에 나눠 타고 하동군 악양으로 출발했다. 장승포농협 아주지점 마트에서 먹거리를 구입한 뒤 사천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꼬불꼬불 돌담길을 지나 12시 30분경 목적지에 도착했다.
빨간 대봉감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우리 일행을 반기는 것인지, 미워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풍성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소장의 아버지께 먼저 인사를 드리고, 어머니께서는 “어서 오라”며 우리를 반겨주셨다. 집안 거실로 들어서자 반찬이 가득한 밥상이 차려져 있었고, 우린 놀라며 “어머니, 저희가 하지요”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아니다, 먹기만 해라” 하셨다.
아버지를 모시고 앉으니 임금님의 수라상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밥맛이 꿀맛이었다.
일행은 감나무 아래로 내려가 각자 맡은 일을 묵묵히 시작했다.
홍사장, 이교수, 최사무국장은 도구를 이용해 감을 따고, 접이식 사다리에 올라 높은 감을 조심스럽게 수확했다. 신부가 첫 걸음을 내딛듯 조심조심 감을 옮겼다.
김이사와 김부자는 감이 부딪혀 상하지 않도록 꼭지에 달린 잔가지를 쪽가위로 제거하는 작업을 맡았다.
중간중간 박스에 담은 감을 선별장으로 나르면, 아버지는 종류별로 분류작업을 했다. 이소장의 동생도 와서 반겨주었다.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어둠이 깔렸다. 남은 감은 내일 따기로 했다.
저녁이 되자 이소장은 숯불을 피우고, 우리는 그 주위에 둘러앉았다. 석쇠 위에는 돼지 목살, 삼겹살, 새우가 올랐다.
아버지께서 즐겨 드시는 매실주도 함께 했다. 노래 18번, 이어 앵콜 19번이 악양마을의 밤을 뜨겁게 달궜다.
아버지의 성함은 이영주 어르신이다.
다음 날 아침 6시 30분, 홍사장과 이교수는 다시 감 따기를 시작했다. 일행도 각자 자연스럽게 일을 나눠 맡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감나무에는 더 이상 감이 보이지 않았다.
작업이 끝나자 아버지는 “내년에도 꼭 오라”고 하시며 손을 잡아주셨다.
“아차, 까치밥은 남겨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